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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일은 잘 하는데…" 최고위직 진출 흔치 않은 이유 [실리콘밸리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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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 퍼라그 아그라왈 트위터 CEO. 이들은 글로벌 기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란 것 말고 공통점이 있다. 이름과 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인도인'이란 것이다. 10년 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인도계 CEO는 인도의 최고 수출 자원"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인의 활약은 눈에 띈다.
"인도계 CEO는 인도 최고의 수출 자원"
인도계가 세계 기술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서 약진하는 원동력이 뭘까. 일단 인도인 수가 적지는 않다. 2019년 말 기준 실리콘밸리 전체 인구 중 동양인은 35%로 백인(33%), 히스패닉(25%) 흑인(2%)보다 많다. 동양인 중에선 중국인이 18%로 가장 많고 인도(13%) 베트남(10%) 필리핀(10%)이 뒤를 따른다. 한국인이 포함된 기타 동양인은 12%로 집계됐다.

업계에선 단순히 사람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도인의 강점이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단련됐다는 점이다. 인도 인구는 13억9340만 명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국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빈부 격차가 심해 살아남기 위해선 개인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협력과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도 배우고 무질서한 문화 속에서 창의력도 키우게 된다.

미국 정부의 기술인력 유치 정책도 인도인의 성공에 한 몫 하고 있다. 미 정부가 발급하는 외국인 취업 허가증(H-1B 비자)의 70% 이상을 인도인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이 받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큰 제약이 없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인도 정부가 수학·과학 인재를 집중 육성하는 것도 인도인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과를 내는 비결로 꼽힌다.

이밖에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인도 사회에 은근히 작용하고 있는 신분제도 실리콘밸리 인도인들을 분발하게 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뒤 본국으로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인도는 다르다. 미국에서 성공했더라도 만약 낮은 계급에 속해 있다면 인도로 돌아가서 입지를 다지는 게 어렵다. 미국에서 성공해야하는 '절박함'이 남다른 것이다.

이 결과 실리콘밸리 주요 기술 기업,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 등에서 인도인들은 똘똘 뭉치며 강력한 '인도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인도계가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회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비결로 분석된다.
한국인 일은 잘 하는데..."튀지 않고 잘 안 뭉친다"
한국인들은 어떨까. '한국계가 부지런하고 똑똑하다'는 평가는 실리콘밸리에서도 통한다. 구글 애플 테슬라 메타플랫폼 등 주요 기업에서 한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도계나 대만계처럼 최고위직에 오르고 미디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가장 큰 이유로 네트워킹 기술의 차이가 꼽힌다. 실리콘밸리에선 평일 업무 시간엔 일에 집중하더라도 주말엔 골프, 하이킹 등 취미를 공유하거나 집에서 BBQ 파티를 열고 사람들을 초대해 교류하는 사례가 흔하다. 일이 아닌 스포츠 등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며 감정적인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인들은 네트워킹 능력이 인도인들보다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문화, 상대적으로 약한 영어 능력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겸손함이 미덕으로 꼽히는 문화도 미국에서 한국인들의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역시 너무 튀는 개인은 좋지 않은 시선을 받지만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일정 수준 조직원들에게 어필을 해야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알아주겠지'란 생각을 하고 묵묵하게 일만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명 글로벌 기업 근무 경험이 있는 미국계 VC 파트너급 한국인은 "본인의 성과에 대해서 나서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남들이 절대 알아주지 않는다"며 "농담 따먹기도 하고 가십거리도 공유하는 가운데 은근하게 자기 어필을 하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며 경험을 전했다.
이진형 스탠퍼드 교수 "한국계 리더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자"
최근 실리콘밸리 한국인 사회에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국인 네트워크를 강화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문화를 만들어보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팰로앨토 리더십 포럼'이다. 이진형 스탠퍼드대 신경과·바이오공학과 교수(스타트업 엘비스 창업자)가 주도해 만든 모임이다. 지난 4월 실리콘밸리 팰로앨토의 엘비스 본사에서 창립 모임이 열렸다. 안익진 몰로코 대표,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 등 한국계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창업자와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 차동준 만도 실리콘밸리 소장 등 CVC(기업형 벤처캐피털) 전문가, 산업은행(KDB), KIC(코리아이노베이션센터) 관계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의 가장 아쉬운 점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문화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은 사람의 역량이 뛰어난데도 앞으로 같이 나아가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라며 "사촌이 땅을 사면 나도 거기에 투자해서 우리 같이 잘하자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전환할 수 있는 리더십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한국인의 위상에 대해선 "역량은 리더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아직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첫 모임에선 △한인 창업자들이 만든 회사들을 구글 메타 틱톡을 넘어서는 최고 기업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 △한국의 투자자와 공공기관의 역할 등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팰로앨토 리더십 포럼은 매년 2회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 계획이다. 미래의 리더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외부 강사를 초청해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자리로 운영될 예정이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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