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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0대는 바둑·고스톱만?…"할 만한 게임이 없다" [선한결의 IT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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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다.' 이 문장을 들으면 대부분은 청년·청소년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겁니다. 50대 이상 게임 이용자를 곧바로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을 텐데요. 그간 게임사들도 모바일 게임 제작·마케팅 등에 있어 중장년~노년층을 우선순위에 두진 않은 분위기입니다.

이런 와중 최근 게임업계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나왔습니다. KAIST와 연세대, 캐어유, 하트버스 등이 모아 낸 ‘세대를 연결하는 게임 디자인 가이드: 50대 이상 게임 이용자를 중심으로’인데요.

50대 이상까지 아울러 즐길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기 위해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컴퓨터 공학, 심리학, 게임 디자인, 스마트에이징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2019년부터 3년간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중장년은 테트리스·고스톱만…"할 만한 게임이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50대의 57.1%, 60~65세의 37.15%가 게임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50~65세의 게임 머니·아이템 구매율도 다른 세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는 소비자층'은 아니란 얘깁니다.

하지만 중장년층을 위한 게임은 매우 한정돼 있다는 게 연구진의 지적입니다. 시중에 나온 게임 대부분이 젊은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시니어들이 게임 이용에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거죠.

중장년층이 주로 하는 게임 장르는 애니팡·테트리스 등 퍼즐 게임, 고스톱·바둑을 비롯한 온라인 보드게임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연구진은 이런 편중 현상이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 아니라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상용 게임이 제한된 탓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작은 글자 읽기 힘들어…선택지 필요
연구에 따르면 중장년 이용자에겐 대부분 게임이 화면부터 ‘걸림돌’입니다. 작은 글씨가 빠르게 지나가고, 외국어와 외래어가 너무 많이 쓰이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연구진은 “게임 인터페이스가 너무 복잡하면 시니어 이용자들이 게임을 할 시도조차 못 하고 포기하게 된다”며 “게임 진행상 중요한 물체나 문구는 너무 작게 디자인하지 말고, 사용자가 크기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습니다.

외래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글을 읽지 못하는 중장년 이용자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게임 진행 중 말풍선이 나올 경우 음성 더빙을 제공하고, 생소한 외국어나 외래어 사용은 지양하는 식입니다.
“난이도 조정 옵션도 제공할 만”
이용자에게 게임 속도와 난이도 선택권을 일부 열어주면 중장년층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중장년층은 빠른 순발력이 필요한 일인칭 슈팅게임(FPS) 등을 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동체시력이 떨어지고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데, 기존 게임들은 중장년이 하기엔 너무 난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시니어(중장년~노년층)는 한 조건에서 실시간으로 지나치게 많은 용량의 정보를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게임상 속도·난이도 조절 기능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을 고려하라”고 했습니다. 게임 이용자가 계속해서 반응 속도를 맞추지 못할 경우 조작 타이밍에 힌트를 주라고도 제안했습니다.
"‘노년은 우울’ 콘셉트는 피해주세요"
연구진은 게임의 콘셉트나 이야기(스토리)에 ‘연령 차별적’ 시각을 담지 말라고도 조언했습니다. 게임상에서 일반적인 노년의 삶을 너무 부정적이거나 우울하게 표현해 중장년 이용자들이 부정적인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이 중장년층 연구 참여자들과 모바일 게임 ‘삶의 여정(Long Journey of Life)’에 관해 나눈 대화에서도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는데요. 59세인 한 시민연구원은 게임상 노년기가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오는 것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이 게임은 인생살이를 바다를 지나는 돛단배에 비유하는데, 노년에 들어서면 화면이 이리저리 삐뚤어지고 그래픽을 통해 반려자와의 사별을 암시하는 등 '전복과 혼란' 이미지만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지적입니다. 함께 연구에 참여한 64세 남성 시민연구원은 "우울해지는 것 같다", 67세 여성 시민연구원은 "과거 회상이 떠오르면서 가끔씩 힘들었다"고도 했습니다.

반면 게임상 이야기가 중장년층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게임도 있었습니다. 모바일 퍼즐 게임 ‘꿈의 집’입니다. 이 게임은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고향 집을 수리하고, 인근 집들을 수리·개조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64세인 한 연구 참여자는 “외국에 나가 살면서 서양인들과 같이 생활을 해보는 기분이 든다”며 “이야기가 재미있어 작은 글씨도 다 읽고 있다”고 했습니다. 63세인 다른 참여자는 “자연에 내 집 만들기, 우리 집 가꾸기, 여행 준비 등에도 적용해 대리 만족 기회를 주는 게임으로 발전시켜 보면 좋겠다”고 평가했다고 하네요.
“50대 이상 게임 인구 관심 가져야”
젊은 이용자들이라면 ‘굳이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연구진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젊은 시절 게임을 했던 이들도 점점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고, 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중장년층의 게임 접근성도 높아진 만큼 50대 이상 게임 인구에 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게임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꿀 때라는 얘기입니다.

연구진은 “게임 디자이너나 개발자들은 젊은 세대인 경우가 많아 50대 이상 이용자의 게임 경험과 니즈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디자인 가이드를 참고해 ‘시니어 친화적’ 게임을 만든다면 시니어 이용자들이 불편함 없이 더 활발하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고, 이는 게임 회사 입장에서도 이용자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중장년층을 배려한 게임이 늘면 세대 간 소통에도 일부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연구진은 “시니어 이용자는 여가 활동을 통해 디지털 기기와 친숙도를 높일 수 있고, 세대 간 소통도 늘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번 디자인 가이드를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했는데요. 앞으로 가이드 내용을 반영한 게임이 나오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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