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단종설'이 나온 '국민 중형차' 쏘나타와 관련해 현대자동차의 공식 답변입니다. 국내 자동차 업계 최장수 모델(37년)이자 누적 900만대 이상 팔려 '국민 세단'으로 사랑받은 쏘나타가 단종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게 최근 업계에서 나온 관측인데요.
빠르면 올해 말 출시 예정인 8세대 쏘나타 '부분 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마지막 쏘나타 내연기관 모델일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을 겨냥해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하던 쏘나타 역시 최근 '단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주장에 무게를 더하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사정
쏘나타 단종보다 더 궁금한 건 '단종설'이 나온 배경입니다. 30대 후반인 기자와 같이 쏘나타를 '국민차'로 알아 온 세대에게 단종은 의외일 수 있지만 쏘나타를 만드는 현대차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또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연간 5만대 이상 판매하는 몇 안 되는 '볼륨 모델(판매량이 많은 대중적인 모델)'인 쏘나타는 최근 판매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고 있습니다. 2000년대까지 줄곧 국내 판매량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쏘나타는 2017년 그랜저에 '왕좌'를 내준 뒤 지난해엔 판매량이 6만7440대에 그쳐 기아 K5(8만4550대)에도 밀렸습니다. 지난 3월에는 재고가 하도 쌓여 쏘나타를 만드는 아산공장 생산라인을 잠시 멈추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부품난에 생산 차질까지 빚는 상황에서 쏘나타는 남아돌았다는 얘기입니다.
국민들이 쏘나타를 예전만큼 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우선 소득 수준이 오르면서 "쏘나타 살 사람들이 그랜저 산다"는 말처럼 한 단계 고급 차량으로 넘어가는 게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취향의 고급화 현상'입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 소비성향이 돈을 더 쓰거나 차량의 크기를 줄여서라도 수입차를 사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또 젊은 세대는 동일한 플랫폼을 쓰는 더 스포티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 철학이 반영된 K5를 선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쏘나타는 여전히 과거 디자인 철학을 반영해 '고급화'를 지향하는데 쏘나타가 처해 있는 위치가 고급과 멀어지게 된 겁니다.
이 같은 고민때문에 쏘나타는 2019년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던 '택시 트림' 생산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택시는 구형 쏘나타로만 출시하고 8세대 모델부터는 택시 모델을 생산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택시와 렌터카 등 법인차량으로 다량 공급되고 있는 것이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배치된다는 판단이었을 겁니다.
또 8세대부터는 '무게감'을 지향하던 디자인 철학을 좀 더 젊은 세대 취향에 맞게 역동적이고 스포티하게 바꿨습니다. 현대차는 이처럼 쏘나타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더 이상 돈이 안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이 없었다면 쏘나타 단종설은 더 늦게 나왔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검은 코끼리(우리 사회에 머물고 있으나, 인지하지 못했던 위험)'로 발생한 반도체 공급의 불균형 초래, 부품 공급망 불안, 원자재값 상승 등은 완성차 기업들에 덜 팔면서도 많이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몇 년 더 빨리 고민하게 했습니다.이 때문에 코로나19 이후 이른바 '돈이 안 되는' 차량을 빠르게 단종시키는 건 세계적 추세가 됐습니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현재 7개 엔트리(진입) 모델 중 3개는 단종시킬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업계에선 벤츠 모델 중 가격이 저렴한 급에 속하는 A클래스 시리즈가 주력 '정리해고'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우디도 올 들어 B세그먼트 'A1'과 소형 크로스오버 'Q2'의 단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포드도 B세그먼트 '피에스타'를 단종시켰습니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 역시 2020년부터 소형차인 '야리스'와 '피트'를 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아도 2024년부터 준중형 'K3'를 생산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들 소형차에 들어가는 부품을 인기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럭셔리카에 넣는 것이 훨씬 이득입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나 배선뭉치는 대부분 범용 제품이기 때문에 값싼 차에도 쓸 수 있고, 비싼 차에도 넣을 수 있습니다.
부품이 모자라 모든 차를 만들 수 없다면 당연히 비싼 차에 부품을 먼저 배정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선 낫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생산효율을 최적화해 수익성을 유지하겠다"는 얘기가 바로 이 맥락입니다. 현대차도 안 팔리는 쏘나타 부품 중 일부를 제네시스 브랜드나 SUV에 우선 투입하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실제 고가 정책을 쓴 대다수 완성차 업체가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의 이익을 냈습니다. 당장 현대차부터 지난해 영업이익 6조6789억원으로 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매출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기아 역시 매출과 영업익 모두 사상 최대치를 다시 썼습니다. 지난해 내내 '반도체 부품난'을 겪었지만 실적은 역대 가장 좋았습니다.
이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BMW, 포르쉐 같은 해외 완성차 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판매량 기준 전 세계 1~11위 기업들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들 기업은 2년 전인 2019년에 비해 1187만대 차량을 덜 팔고도 78조7000억원(영업이익)이나 더 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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