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장소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겐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프랑스 남부도시 아를의 ‘노란 집’이 그랬다. 노란 집은 정신병원에서 나온 고흐가 내일을 꿈꾸며 다시 붓을 잡은 곳이다. 비운의 마지막을 맞은 곳이지만, 고흐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다. 폴 고갱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었다.
고흐는 인생의 멘토이자 친구인 고갱에게 아를로 올 것을 권유하면서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요리를 해줄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겠지만 손수 해먹으면 훨씬 생활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고흐는 요리를 못했다. 그림에 몰두하느라 며칠씩 굶는 등 요리엔 관심도 없었고, 고흐가 요리를 하면 고갱은 ‘고흐의 요리는 그의 그림처럼 온갖 색채로 뒤범벅이 되어 고역에 가깝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반대로 고흐는 고갱의 요리에 대해 ‘최고의 만찬’이라고 극찬했다. 고흐가 고갱과 아를의 노란 집에 머물 당시 요리는 주로 고갱이 했다. 그는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었다. “품위 없는 여성은 결코 요리를 잘할 수 없고, 대담한 마음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해군으로 몇 년간 세계를 돌아다닌 고갱은 해산물 요리의 달인이었다. 고흐가 장을 보면 고갱은 불을 피우고 칼질을 했다. 두 화가의 밥상 동거는 ‘노란 종이 위에 놓여 있는 청어(1889)’, ‘물고기가 있는 정물(폴 고갱, 1878)’ 등의 작품으로 남았다.
고흐가 1889년 그린 ‘두 마리 게’는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그렸다. 한 마리는 뒤집어져 있고, 한 마리는 제 모습을 하고 있다. 고흐 특유의 거친 붓터치와 함께 대조되는 배경과 대상의 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석은 여러 가지다. 뒤집어진 게는 자신을, 온전한 게는 동생 테오를 상징한다는 풀이가 많다. 한 번 뒤집어진 게는 다른 게가 뒤집어줄 때까지 혼자서는 뒤집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고독과 소외감에 몸부림치며 동생과의 영원한 동반자 관계를 꿈꿨던 고흐는 두 마리 게를 통해 테오에게 외쳤는지도 모른다. “테오, 어서 와서 나를 좀 뒤집어 달라”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