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이렇게 좋아하다니, 나중에는 공부 잘하는 거 아니야?" 흔한 부모들의 착각이라는데, 기자도 어쩔 수 없더군요. 아이가 돌이 지나면서 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직접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며 내밀기도 하고, 직접 책을 펼쳐 보기도 합니다.
아이 스스로 그림책을 볼 때 "자전거 탄 사람 어디 있니?", "찍찍대는 쥐는 어디에 있을까?"라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곧잘 지목하기도 합니다. 책 읽는 습관의 첫발은 잘 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되니 문제도 생겼습니다. 다양한 책을 보게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데, 좁은 집에 마냥 책을 살 수만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니게 된 곳이 도서관입니다. 지역 도서관에 의외로 영유아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유아 책들은 색깔이 다양하고 오감만족이 되도록 촉각요소까지 넣어져 있습니다. 그림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팝업북이나 책장에 접힌 부분을 펼치는 플랩북들이죠. 책이라기 보다는 장난감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책들도 많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두권 빌리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훼손 문제입니다. 아이들은 책이 쉽게 찢어진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어른처럼 손을 정교하게 다루지도 못합니다. 책 겉표지나 팝업 장치 등을 힘껏 당겨 찢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구입한 책은 아이가 혼자 볼 수 있도록 두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부모와 함께 보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공공재라고 생각하니 책을 빌려다 놓고 보면서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도서관에서 (만져보는) 책들을 빌리면 분명 훼손이 될텐데. 이렇게 비치해 놓고 빌려주는 게 맞나' 입니다.
접힌 부분을 펼치면 새로운 그림이 나오는 플랩북은 찢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책을 찢는 아이가 한둘은 아닐 텐데 도서관 사서분들이 노고가 많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어떻게 수선해 반납해야 사서분들이 덜 번거로울지도 궁금해졌습니다.
며칠 뒤 도서관을 방문해 직접 여쭤봤더니 다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군포시립중앙도서관에서 아동도서 업무를 담당하는 최애진 사서는 "찢어진 책을 섣불리 수선해 반납하면 변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손상된 그대로 반납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가정에서 셀로판테이프로 책을 붙여 오는 경우가 많은데, 불투명하고 변색까지 되는 셀로판테이프는 오히려 책을 손상시킨다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최애진 사서는 "수선을 위해 셀로판테이프를 떼는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훼손된 그대로 가져오시면 도서관에서 전용 제품을 사용해 책을 수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선이 가능하다면 변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반납하며 손상된 부위를 알려주면 업무가 더 수월하다고 '자진신고'도 권했습니다. 그는 "유아들이 책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도서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성인 도서와 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진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훼손된 책을 몰래 반납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받았습니다. 도서관의 어린이가족실 김학자 담당은 "유아 책은 아이들이 당기도록 만든 부분들이 있다. 그런 부분이 쉽게 잘 뜯기는 것도 알고 있다"며 "반납하며 손상됐다고 알려주면 괜찮다고 말한 뒤 넘어갈 수 있지만, 몰래 반납했다 발견된 경우에는 대출 기록을 보고 저희가 연락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 먼저 말씀을 주시지만 드물게 몰래 반납하고 다음 대출받는 분이 발견해 변상을 요구하는 일이 생긴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아들은 책을 험하게 다루기도 하지만 입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인데다 영유아들은 백신도 맞지 않으니 아무래도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최애진 사서는 "도서관 책은 꼼꼼한 살균 절차를 거친다"며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도서관 자체적으로 살균하기도 하지만, 걱정된다면 대출받으면서 개별 살균도 가능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실제 도서관 곳곳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외선 책 살균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책 전용 소독 티슈도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개인 책을 가져와 이용해도 된다는 설명에 아이 책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득 다른 부모들은 아이에게 어떤 책을 많이 보여주나 궁금해졌습니다. 아이가 직접 고른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어려운 나이죠. 최애진 사서는 "일종의 트렌드처럼 유행하는 작가가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구름빵과 알사탕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의 인기가 꾸준한 가운데, 올해는 한국인 최초로 안데르센 상을 받은 이수지 작가의 책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도서관의 어린이가족실 입구 옆에 이수지 작가 책이 따로 전시되어 있더군요. 책의 인기가 너무 높아 관내에서만 볼 수 있는 책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최애진 사서는 아동도서를 담당하며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우선 많은 부모가 자신의 대출증으로도 자녀의 책을 빌린다고 하네요. 그는 "아이에게 독서 습관을 길러주려면 부모도 책을 빌려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가족 모두가 책 읽는 환경을 만들면 아이도 자연스레 독서를 즐기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읽어준 책은 많지만, 올해 제가 제대로 읽은 책이 있기는 한가 생각하니 문득 부끄러워졌습니다.
최애진 사서는 또 "아이들이 뛰거나 소리 질러 주의를 주면 항의하는 부모들이 간혹 있다"며 "공공시설에서는 함께 조심하고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