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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괜찮다고?…전문가들 "장담 못해"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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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26일 '임금피크제가 고령 근로자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노사 모두 향후 판결이 미칠 영향력과 유불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다룬 사건은 원래 정년이 61세이던 회사가 정년을 유지하면서 임금만 삭감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라, 정년을 연장해주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회사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정년 연장형도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 본 '대교 사건'
임금피크제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 고용촉진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촉진법 위반의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 타당성(임금 삭감이나 경영 효율화가 목적인지)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임금 삭감 폭이 크지는 않은지)△대상 조치(깎인 임금 대비해 업무량도 감축됐는지) 도입 여부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본래 목적에 사용됐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는지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이 4가지 조건을 고려해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기존 정년 61세를 유지하면서 임금을 대폭 삭감한 사례이기 때문에, 이 사건의 파장은 제한적이며 특히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큰 문제가 없을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년연장형을 고령자고용법 위반으로 본 하급심 사건이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 전에 임금피크제 자체가 고령자 고용촉진법 위반이라고 본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지난해 9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나온 주식회사 대교의 임금피크제 사건이다. ▶관련기사 "40대에 임금피크제 적용하려던 회사…법원 '무효'"

당시 대교의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법원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교는 2009년 취업규칙을 변경해 정년을 2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높은 직급인 G1, G2 직원은 57세까지, G3, G4 직원은 5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G1은 50세부터, G2는 48세부터, G3, G4는 44~46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시작되게 한 것이다.

각 직급별로 4~5회 내에 승급(승진)을 하지 못하면 직급에서 정해진 나이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형식이었다. 이 경우 이르면 40대 중반부터 임금이 감액 돼 논란이 불거졌다.

임금 삭감 폭도 컸다. 삭감률이 30%에서 시작해 50%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삭감된 임금은 감급(감봉)의 징계를 받는 경우보다도 훨씬 낮았고, 대기발령을 받아서 근로제공을 하지 않은 직원과 비슷했다.

앞서 1심은 임금피크제가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를 얻지 못했다"며 절차적인 문제가 있어 무효라고 판단한 바 있다. 2심 서울고등법원은 여기 그치지 않고 "임금피크제 자체가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한 내용"이라며 "40대 중반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근로자들은 정년까지 10년동안 절반에 가까운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고령자고용법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제공하는 근로의 질이나 양과 무관하게 오로지 '일정한 연령에 도달했는지 여부'와 임금 삭감을 연동시키는 것은 임금이 근로의 대가라는 점에 비춰보면 '합리적' 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상생이 아니라) 사실상 직원을 퇴출하려는 의도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으로 보이며,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은 직원의 퇴사율이 실제로 높았다"고도 꼬집었다.

이번에 대법원이 제시한 요건을 대부분 찾아볼 수 있다. 대교 사건에서 제시한 서울고법의 판단 기준이 대법원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기준, 정년 연장형에도 적용
결국 대법원의 판단 기준은 정년연장형과 유지형을 가리지 않고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법원이 제시한 4가지 요건은 하급 법원들에 기준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예상된다"며 "법원은 앞으로 이 기준을 정년연장형·유지형을 가리지 않고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위반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출신의 한 변호사도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하급심에서 소송이 진행 중인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에도 이 기준이 적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의 형태를 불문하고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간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로 제기된 소송은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19년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소송이 크게 늘었다. 금융권에서는 시니어노조까지 결정하면서 임금피크제 소송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거셌다.

다만 당시 임금피크제 소송은 도입 과정의 절차를 주로 문제삼았다. △도입 과정에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고령 근로자들만의 동의를 따로 받아야 하는지(건강보험공단 사건) △집단적 동의 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대교 사건) △근로자의 개별 동의를 받았는지 등이 쟁점이었다.

절차 관련 사건에서는 회사가 이긴 사건이 훨씬 많다. 비록 심리불속행 판결이긴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임금피크제 소송에서는 대법원에서 회사 측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그런 면에서 임금피크제 자체가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 무효라고 명확하게 판단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업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이 기준이 적용된다면 결국 '임금 총액'이 삭감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은 임금 삭감을 목적으로 한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고 해도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해 정년까지 받을 수 있는 임금 총액이 임금피크제 도입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다면 위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52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고, 삭감률이 과도한 사업장을 상정한다면 정년연장형이어도 위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교 판결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괜찮아" 방심은 금물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사실상 압박했던 기재부 등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보여 눈길을 끈다. 대법원이 제시한 네가지 요건을 지침에 담아서 공공기관들에게 요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네가지 기준을 완전히 갖춘 회사고, 도입 절차에서도 문제가 없었다면 정년연장형과 정년유지형을 불문하고 안심해도 된다. 기존보다 정년을 늘렸고, 줄인 재원으로 신입 직원을 뽑고, 업무량도 적절히 감축하고, 임금도 적절히 감축했다고 자신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전부 애매하다. 특히 오너기업이나 중견규모의 사기업일수록 임금피크제 삭감률을 높인 사업장이 적지 않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해서 임금이 감축되지 않으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의미가 없다"며 "직급을 박탈하거나 눈에 띄는 방식으로 업무를 저감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령직원에 대한 차별, 소외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성토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는 사업장들 대부분은 정년을 연장해주느니 그냥 신입을 안뽑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겠다는 선의로, 대교 판결 등을 바탕으로 삼아 기준을 제시했을 것이다. 다만 그 기준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소송에 휘말려 판례가 누적되고 시간이 흘러야 한다.

'법리 외적'인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26일 각 노동조합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교섭을 진행 중인 사업장은 이번 대법원판결의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 재검토하라"며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사업장도 폐기 등을 위한 특별 교섭 요구안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한국노총도 대법원 선고일 당일 "현장지침 등을 통해 노조차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설 것을 독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노총 산별 노조의 한 간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노조의 자문이 쏟아졌다"며 "모아서 집단 소송을 할지, 개별 소송을 우선 제기하라고 안내 할지 노조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노조 입장에서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임금피크제 재검토'라는 패를 지렛대로 삼아 다른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임금피크제의 법리와 관련된 문제만 보는 것은 효력을 지나치게 축소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고령자고용법 위반을 이유로 삭감된 임금을 청구한다면, 임금체불이 아닌 '불법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10년이 되는 것도 변수다. 법무법인 중심의 류재율 대표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퇴직한 지 10년에 가까운 근로자들로부터도 소송 문의를 계속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회사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니까 괜찮다"라고 장담할 수 있는 회사는 얼마나 될까.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대법원은 4가지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개별 사안 별로 판단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사업장이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업장이 이번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생각은 희망사항"이라고 꼬집었다.

당분간 정년연장형은 괜찮다는 거친 생각, 전문가들의 불안한 눈빛, 그걸 지켜보는 기업들의 입장이 뒤섞인 시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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