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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지민도 봤다"…제주도 '혐오 녹이는 전시' 성공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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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힐링'을 기대한다. 아름다운 작품에서 행복을, 작가 정신에서 감동을 얻고 나면 현실의 괴로움을 버텨낼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를 주제로 한 전시는 '독이 든 성배'다. 일상에서 늘 겪는 상처를 돈과 시간까지 써가며 일부러 헤집을 이유가 없어서다.

티앤씨재단이 지난해 4월부터 지난 23일까지 '혐오'를 주제로 제주 서귀포 포도뮤지엄에서 연 ‘너와 내가 만든 세상 - 제주展’은 드문 예외 사례다. 이 전시의 총 관람객은 7만5000여명. 민감한 주제로, 그것도 제주도 산간 지방에 새로 생긴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념비적인 성과다. 전시는 특히 젊은 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도 지난해 말 이곳을 방문할 정도다. 비결이 뭘까.
석학들과 반년간 전시 준비, 젊은 작가들 '총출동'
티앤씨재단은 전시 개막 6개월 전인 2020년 10월부터 전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이때, '혐오 사회'를 주제로 석학들을 불러모아 'APOV(Another Point of View) 콘퍼런스 Bias, by us’를 연 게 시작이다. 티앤씨재단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 초, 아시아인에 대한 세계적인 혐오에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콘퍼런스가 열린 사흘동안 최인철 서울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이은주 서울대 교수, 최호근 고려대 교수, 이희수 한양대 특훈교수,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 등이 '혐오 현상'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을 쏟아냈다. 주제는 △가짜 뉴스와 확증 편향으로 인한 혐오 현상 △홀로코스트, 이슬람포비아 등 역사 속 대학살 사건 △중세 유럽 역사와 독일 역사 속 혐오 사건까지 다양했다.

티앤씨재단은 콘퍼런스 결과를 기반으로 '혐오를 배격하고 공감과 포용을 이끌어내자'는 전시 주제를 정했다. 작가로는 한국의 강애란, 권용주, 성립, 이용백, 최수진, 진기종 작가 등 5명과 중국 장샤오강, 일본 쿠아쿠보 료타 등 아시아의 실력 있는 젊은 예술가 8명을 모셨다.



추상적이고 지루해 보이기 쉬운 주제지만, 작가들은 재기 넘치는 설치작품으로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티앤씨재단에서 직접 기획한 다섯 개의 테마 공간은 디지털 인터랙티브 등의 체험 방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입체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배우 유태오 등 한류 스타들도 오디오 도슨트로 동참했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포도뮤지엄
포도뮤지엄은 제주공항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서귀포시 안덕면 산간에 있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관광객 대부분이 바다 근처의 자연환경을 즐기기 위해 제주도를 찾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불리한 조건이다. 주제도 불편했다. 가짜뉴스, 뒷담화, 종교적·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뿌리깊은 혐오와 차별 등을 정면으로 다뤘다. '과연 잘 될까' 하는 우려의 시선이 꽂혔다.

하지만 예상과 정 반대로 관람객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영혼 없는 힐링팔이'에 지친 관람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달했다는 평가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의 후기에는 “전시를 보다가 눈물을 흘린 건 내 평생 처음” “잔잔한 감동과 반성의 시간을 선사하는 전시였다” 등의 호평이 600여개 올라왔다. 관람객이 몰리면서 당초 지난 3월 7일 끝날 예정이었던 전시는 5월 23일까지 연장됐다.


시의적절한 주제,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동시대성, 어렵고 추상적인 주제를 직관적이고 친절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완성도 높은 기획 등 3박자가 만들어낸 성과라는게 미술·전시 업계의 평가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은 “개관전은 뮤지엄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보여주는 전시인데, 다양성을 추구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담으려는 포도뮤지엄의 방향과 맞아떨어졌다”며 “기존 미술관들이 시도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전시, 교육과 소통에 무게를 둔 점, ICT 기술을 성공적으로 접목한 점 등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는 "혐오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과거 다보스에서 진행한 난민 체험 전시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혐오와 공감을 체험하는 이번 아포브(APoV) 전시를 기획했다"고 했다.


포도뮤지엄 2층에서 동시에 진행된 ‘케테 콜비츠 展 ? 아가 봄이 왔다’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케테 콜비츠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들을 잃은 슬픔을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로 승화시킨 독일 작가다. 관람객들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떠올리며 전쟁의 잔혹함을 되새겼다. 포도뮤지엄 관계자는 “중학생부터 60~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이 전시에 방문했다”며 “평균 관람시간이 1시간에 달할 정도로 오래 머무르면서 꼼꼼히 메시지를 정독해 놀랐다”고 전했다.
메타버스 접목, NFT 수익은 기부…“다음 주제는 소외”
메타버스와 대체불가능토큰(NFT) 등을 전시에 적극 접목하는 시도도 큰 호응을 받았다. 티앤씨재단은 제주도에 방문하기 어려운 일반인을 위해 지난해 7월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에서 실제와 동일하게 포도뮤지엄과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을 3D로 구현했다. 외관은 물론 1층 로비와 카페, 전시 공간, 뮤지엄 밖 제주 해변과 자연 풍경까지 그대로 재현한 게 특징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까지 25만5000명이 관람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제주에 전시된 작품 중 13점을 NFT화(化)해 경매에 부친 것도 눈에 띄는 행보다. 이들 작품으로 포도뮤지엄이 올린 수익은 총 4억7000만원. 수익금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을 지원하고 제주도를 포함한 여러 지역 취약계층 아동과 청소년 교육 등을 돕는 데 사용됐다. 이 중 경매 수익금과 김희영 대표의 작품 판매대금 전액인 1억6500만원은 코로나로 인한 위기 가정을 돕기 위해 굿네이버스에 기부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최인철 서울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 역사, 사회 분야 교수 9명이 쓴 ‘헤이트’(Hate)도 출간됐다. 콘퍼런스에서 논의한 내용 등을 포함해 인류 역사에 만연했던 혐오의 문제를 설명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공감과 포용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서술한 책이다.

포도뮤지엄은 오는 7월 초 새로운 전시를 열 계획이다. 주제는 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외에 대한 이야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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