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을 하고 작물을 정성스럽게 키워 수확하는 것은 농사의 기본 과정이다. 넓은 땅에 파종된 곡식을 일일이 낫으로 베는 건 상당히 고된 일이다. 19세기 발명가들은 곡식을 빠르게 수확하는 기계를 고안했다. 미국의 오베드 핫세는 1833년 추수 기계로 특허를 받으며 ‘기계 수확 시대’를 개척했다. 비슷한 시기, 사이러스 맥코믹은 1831년 수확 기계를 발명하고 현장 시험을 했다며 오베드의 특허가 권리 침해라고 맞받았다. 이후 둘의 농기계 특허 분쟁은 25년 이상 지속됐다.
맥코믹은 이후 맥코믹하베스팅머신컴퍼니를 설립했다. 1939년까지 10만 대 트랙터를 제조했고, 1950년대 들어서는 미국 농기계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트럭과 밴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 경쟁사의 도전에 밀려 어려움을 겪다 1981년 사업부가 매각되거나 재편됐다.
이 회사가 남겨준 유산이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맥코믹하베스팅머신컴퍼니는 1907년 농업용 픽업트럭을 만들었고, 1953년엔 트럭 기반의 여객운수용 차량 ‘트래블올’을 양산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2도어 오프로더 차량인 ‘스카우트 80’도 제조했다. 이후엔 1965년 ‘800’, 1968년 ‘800A’, 1970년 ‘800B’, 1971년 ‘스카우트 2’, 1977년 ‘슈퍼 스카우트’ 등 다양한 차량을 만들며 지프와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결국 스카우트는 지프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선 농기계 전문기업이 만든 ‘정통 오프로드 차량’으로 많은 이목을 끌었다. 1979년 ‘스카우트 3’ 개발을 앞두고 수익성 문제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이 모델의 콘셉트 차량은 인디애나주 어번의 코드 듀센버그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최근 이 스카우트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맥코맥하베스팅머신컴퍼니가 1985년 나비스타로 사명을 바꾼 이후 폭스바겐그룹의 상용차 계열사 트라톤이 나비스타를 인수하며 스카우트 브랜드를 다시금 제조하겠다고 나섰다.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선호도가 높은 미국 시장에서 전기 픽업트럭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에서 스카우트를 전기 픽업 브랜드로 택했다. 미국인에게 스카우트는 지프와 경쟁했던 향수가 남아있는 브랜드여서다. 폭스바겐은 이를 통해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과 맞붙겠다는 계획이다.
스카우트가 부활한 데는 포드의 브롱코 재생산 전략이 먹혀든 것도 이유로 작용했다. 브롱코는 1965년부터 오프로드 차량으로 이름을 날리다 1996년 생산이 중단됐다. 그러다 글로벌 오프로드 애호가들의 요청으로 26년 만에 부활해 흥행을 거두고 있다. 폭스바겐그룹도 복고풍 브랜드 전략을 기반으로 스카우트 부활에 기대를 걸고 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