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스타트업에 웬 최고기술책임자(CTO)?”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패션·뷰티·식품 등 이른바 ‘라이프 테크’ 분야 스타트업계에선 이런 인식이 적지 않았다. 기술 분야 컨트롤타워는 따로 둬야 할 정도로 절실한 직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옛말이 됐다. 콘텐츠 기업부터 패션·세탁·물류 스타트업까지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CTO 자리를 신설하는 곳이 늘고 있다. 스톡옵션을 당근책으로 제시하면서 구글 아마존 넥슨 카카오 등 국내외 빅테크 출신을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
22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시리즈B 투자 유치로 310억원을 수혈한 키즈 에듀테크 스타트업 자란다는 아마존, 라인 출신의 김택주 CTO를 영입했다. 지난 2월 1200억원의 투자금을 추가로 유치한 콘텐츠 스타트업 리디는 구글 출신을 영입했다. 지난달부터 조성진 전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CTO를 맡고 있다. 구글코리아에서 엔지니어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조 CTO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스켈터랩스를 공동 창업해 CTO를 맡다가 리디로 이직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시리즈A로 100억원을 투자받은 원격의료 스타트업 닥터나우는 올초 쿠팡과 카카오 출신의 이현석 CTO를 선임했다. 이 CTO는 쿠팡, 카카오스타일 등에서 주문 및 배송 시스템을 설계하고 관련 서비스를 확장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닥터나우는 이 CTO를 중심으로 서비스 기능 강화와 이용자 편의성 증대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이용자가 급증한 온라인 세탁 서비스 ‘세탁특공대’를 운영하는 워시스왓은 최근 아마존과 웨이브 출신 조휘열 CTO를 채용했다.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들엔 특히 CTO가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필수 직책이 됐다. 패션 스타트업 무신사는 지난 3월 CTO직을 신설해 배달 서비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베트남법인에서 CTO를 지낸 조연 씨를 채용했다. 조 CTO는 다음, 엔씨소프트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비슷한 시기에 온라인 상거래업체 티몬은 CTO 자리에 황태현 전 구글 검색 데스크톱실험 총괄엔지니어를 채용했다. 온라인 상거래 서비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도 지난해 하반기에 카카오에서 클라우드 관련 업무를 맡았던 류형규 CTO를 영입했다. 차량공유업체 쏘카도 최근 류석문 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개발이사를 CTO로 채용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업종에서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IT 수준이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IBM기업가치연구소가 50개국, 3000여 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2021 CEO 스터디’에 따르면 CEO의 39%가 조직 성공에 가장 중요한 C레벨 임원으로 CTO와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를 꼽았다.
무엇보다 회사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 기술 경쟁력은 핵심 자산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