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5분 충전으로 200㎞ 이상을 달릴 수 있는 급속충전형 전기차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반면 도요타자동차와 닛산자동차 등 일본차들의 충전성능은 현대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글로벌 전기차 경쟁에서 밀려날 우려가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8일 보도했다.
◆글로벌 車업계 급속충전 경쟁
현대자동차는 350㎾ 출력의 급속충전이 가능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형 전기차 '아이오닉5'를 이달부터 일본 시장에 투입한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 내놓은 모델이다. 350㎾ 출력의 급속충전기를 사용하면 5분 충전으로 약 220㎞를 달릴 수 있다. 사토 겐 현대모빌리티재팬 선임 스페셜리스트는 "주유소 급유와 비슷한 감각으로 전기차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지금까지 급속충전이 가능한 전기차는 선두주자인 테슬라를 제외하면 최고급 브랜드들의 전유물이었다. 테슬라는 2019년 250㎾ 출력의 급속충전기를 개발해 주력 차종인 '모델3'에 도입했다. 15분 충전으로 275㎞를 달릴 수 있다.
포르쉐는 2020년 270㎾ 출력의 급속충전이 가능한 전기차 '타이칸'을 투입했다. 4분30초 충전으로 100㎞를 달릴 수 있다. 2021년 아우디도 270㎾ 급속충전이 가능한 전기차를 투입했다. 아이오닉5는 대당 가격이 500만엔(약 4968만원) 안팎으로 일반 소비자들이 주고객층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충전시간 단축경쟁을 벌이는 것은 전기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충전시간이기 때문이다. 딜로이트토머츠그룹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전기차 구입을 계획하는 소비자의 20% 이상이 충전시간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연기관 차량은 몇 분 만에 연료를 가득 채울 수 있지만 전기차는 급속충전기로도 완전히 충전하는데 30분 이상이 걸린다.
반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고출력 급속충전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 닛산의 주력 전기차 '아리아'의 충전 출력은 130㎾다. 도요타가 지난 12일부터 일본에서 정기구독 방식으로 판매를 시작한 'bZ4X'의 출력도 150㎾로 아이오닉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아리아가 375㎞를 달리려면 급속충전기를 사용해도 30분 가량을 충전해야 한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급속충전 경쟁에서 뒤지는 이유는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도쿄전력홀딩스의 충전 인프라 자회사인 이모빌리티파워(eMP)가 주도하고 있다.
이모빌리티파워가 설치하는 급속충전기는 대부분 50㎾ 이하다. 지난해부터 90㎾ 충전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닛산 관계자는 "일본의 충전 인프라를 고려하면 130㎾인 아리아의 충전성능은 충분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급속충전보다 싼 전기차
반면 테슬라는 2012년부터 전 세계에 고출력충전 인프라망인 '슈퍼차저'를 깔고 있다. 지금까지 250㎾급 급속충전기 등 약 3만기 이상을 설치했다. 폭스바겐그룹과 현대자동차 등이 출자한 전기차 충전 서비스 회사 아이오니티는 2025년까지 유럽에 약 7000기의 350㎾급 급속충전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폭스바겐의 충전 서비스 회사인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가 2018년부터 350㎾ 급속충전기를 설치하고 있다.비용 부담도 일본 업체들이 급속충전이 가능한 전기차 개발을 주저하는 이유다. 고출력 급속충전이 가능하려면 고전압을 견딜 수 있도록 전기차 설계를 대폭 변경해야 한다. 현대자동차와 포르쉐는 전기차의 배터리와 모터가 800V의 전압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를 바꿨다.
일본 전기차의 설계는 400V 수준에 머물러 있다. 800V 전압을 견디려면 제조비용이 더욱 비싸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은 0.6%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일본 자동차 업체는 자국 시장에서 전기차 보급을 우선시하고 있다. 급속충전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가격을 낮추는데 주력하는 이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급속충전 경쟁에서 경쟁사와 차이가 벌어지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엔진차량 시대에 확보했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