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때아닌 사외이사 구인난을 겪고 있다. 새 정부 내각 합류나 지방선거 출마 등으로 갑작스럽게 사표를 내는 사외이사들이 많아서다. 법적 인원수를 유지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짧은 기간 ‘최적의 인물’을 구하는 게 만만치 않은 숙제다. 6.1지방선거를 전후로 적잖은 인물이 사표 대열에 추가 합류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파상적으로 이어져온 사외이사 확보 움직임이 순식간에 경쟁 구도로도 바뀔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새 정부로 가는 사외이사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안덕근 신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났다.안 본부장은 2년 가까이 임기를 남겨두고 있었지만,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준수를 위해 사표를 냈다. 그의 사임으로 4명이던 LG에너지솔루션 사외이사는 신미남 전 두산퓨얼셀 사장·여미숙 한양대 교수·한승수 고려대 교수 등 3명으로 줄었다.안 본부장 뿐만이 아니다. 최근 새 정부의 주요 고위공직자로 내정된 인물들이 줄줄이 기업 사외이사직을 그만뒀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쓰오일)와 한화진 환경부 장관(삼성전자), 이창양 산업통상부 장관(LG디스플레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AK홀딩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신세계인터내셔날),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두산에너빌리티), 왕윤종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효성화학),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한솔케미칼), 복두규 대통령비서실 인사기획관(쇼박스) 등이 대표적이다.
예상치 못한 사외이사 공백에 맞닥뜨린 기업들은 서둘러 후임자를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 상법에 따르면 일반 상장사는 전체 이사 수의 4분의 1 이상,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기업은 전체 이사 수의 과반(최소 3인)을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한다. 기존 사외이사의 중도 퇴임 등으로 이 요건을 맞추지 못하게 되면, 결원이 발생한 뒤 처음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후임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어찌하오리까”…로펌 자문도 줄이어
특히 감사위원을 겸하던 사외이사가 퇴직하면서 감사위원회 운영요건을 채우지 못하게 된 경우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3인 이상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이 같은 요건을 맞추기 위해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최근 박만성 법무법인 율촌 고문을 급히 사외이사로 영입해 오는 26일 열리는 임시총회에서 정식으로 선임하기로 했다. AK홀딩스도 다음달 28일 임시 주총을 열어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두 회사는 모두 최근 새 정부 내각 인선에 따른 사외이사 사직으로 감사위원이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비슷한 처지인 효성화학과 한솔케미칼 등도 후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물색에 부랴부랴 나섰다.
일부 기업은 구인난에 대비해 법원에 일시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선임을 신청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창양 장관이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법원에 신청해 지난달 26일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경영전문대학원 교수를 일시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오 이사의 임기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가 끝날 때까지로 정해졌다. 상법에선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기업의 이사나 감사 등 이해관계인이 감사위원 결원에 대처하기 위해 법원에 일시 감사위원 선임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이 일종의 인사추천위원회 기능을 하는 셈이다. 로펌 관계자는 “당장 후임자를 찾기 어려운 몇몇 기업이 일시 감사위원 선임 신청을 의뢰했다”며 “이 같은 사례가 갈수록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발 ‘줄사퇴’ 비상
산업계에선 현재 대통령실 예상 구성인원만 200명 가까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당분간 기업 사외이사들의 줄사표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 예정인 공직자만 4100여명에 달한다.이미 일부 지역에선 선거를 위해 기업 사외이사가 중도 퇴임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이갑준 리노공업 사외이사는 최근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최근 부산 사하구청장 선거에 후보자로 나섰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