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속 시청’은 요즘 젊은 세대가 콘텐츠를 즐기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영상 콘텐츠 재생 속도를 1.25배속 또는 2배속 등 자신이 원하는 대로 빠르게 설정해 시청하는 사용자가 늘고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뷔페식 콘텐츠가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고, 봐야 할 것이 많아진 세상에서 하나의 콘텐츠를 진득하게 정상 속도로 시청하는 게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배속 시청 외에 영상을 건너뛰면서(스킵) 원하는 장면만 찾아보는 사람도 흔하다. 배속 시청과 스킵은 오늘날 콘텐츠 시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映を早送りでる人たち)》은 콘텐츠 소비의 대세로 자리 잡은 배속 시청의 원인과 결과를 진단한 책이다. DVD 잡지 편집장을 거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다 도요시는 콘텐츠 시장을 향해 쓰나미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를 소개한다. ‘왜 요즘 젊은 세대는 영화나 영상을 빨리 감기로 재생하면서 보는가?’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된 취재는 콘텐츠 시장의 절박함과 위기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2021년 3월 일본의 한 리서치 회사(크로스 마케팅)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69세 남녀의 34.4%가 배속 시청을 한 경험이 있었다. 20대 남성의 54.5%, 20대 여성의 43.6%가 배속 시청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30대(남성 35.5%, 여성 32.7%), 40대(남성 31.8%, 여성 25.5%)와 비교해 젊은 세대의 배속 시청 경험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은 그 원인을 세 가지로 지목하고 있다. 영상 작품의 과다 공급, 영상 소비 패턴의 변화, 그리고 소위 ‘타이파’라고 불리는 시간 가성비다. 타이파는 타임 퍼포먼스(time performance)의 약자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신조어다.
젊은 세대의 영상 소비 패턴 변화는 콘텐츠 시장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OTT에 올라온 다양한 영상을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영상을 ‘콘텐츠’라고 부르고 오락처럼 즐긴다. 작품은 감상하는 대상이지만 콘텐츠는 소비하는 대상이다. 콘텐츠(contents)라는 영어 단어에는 이미 ‘내용물’이나 ‘용량’과 같은 의미가 포함돼 있고, 단시간에 대량으로 소비할 때 얻는 만족감과 쾌감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책은 ‘감상’과 ‘소비’의 차이를 음식에 비유한다. 감상이 음식을 그 자체로 천천히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면 ‘소비’는 음식을 실속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섭취하는 것이다.
“10초의 침묵 장면에서는 10초의 침묵이 나타내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어색함, 긴장감,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배우의 사려 깊은 표정과 표현…. 그것들은 모두 창작자의 의도입니다. 9초나 11초가 아닌 10초여야 하는 필연성이 있습니다.”
잠깐의 침묵도 기다릴 여유가 없어진 타이파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 책은 사용자들의 가처분 시간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콘텐츠산업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 것인지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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