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억원(2021년 2월)→33억원(6월)→35억원(10월)→38억원(2022년 5월).’
2020년 말 입주한 서울 서초구 래미안 리더스원 아파트(사진)의 전용면적 114㎡짜리 보류지 매물은 세 차례나 유찰됐다. 그런데도 최저입찰 기준액은 공고 때마다 오르고 있다. 강남권에 새 아파트 공급 가뭄이 장기화되자 유찰에도 불구하고 시세를 반영해 계속 가격을 올리고 있다.
지난 10일 서초우성1차재건축조합은 래미안 리더스원 보류지 2건(각 전용면적 114㎡)에 대해 18일까지 입찰 신청을 받는다고 공지했다. 두 물건 모두 최저 입찰 가격은 38억원으로 지난해 2월 처음 보류지 매각 때 32억원에 올라왔던 물건이다. 래미안 리더스원은 지하 3층~지상 최고 35층, 12개 동, 1317가구 규모로 도보 10분 거리에 서울지하철 2호선·신분당선 강남역이 있다.
보류지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조합원 수 등이 달라질 것에 대비해 일반에 분양하지 않고 남겨둔 물량이다. 조합은 전체 가구 가운데 1% 범위에서 보류지를 정할 수 있다. 만 19세 이상 또는 법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최고가 공개경쟁입찰 방식이라 청약통장도 필요 없다. 하지만 낙찰 후 6개월 안에 대출 없이 잔금까지 모두 치러야 해 사실상 자금 여력이 있는 ‘현금 부자들만의 리그’로 통한다.
리더스원 조합 관계자는 “지난 공고 때도 몇몇 매수 희망자가 입찰을 신청했지만 막판에 철회하면서 계속 유찰됐었다”고 전했다. 거래 불발에도 입찰가를 계속 올린 데 대해 조합 측은 시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합 입장에서는 시세대로 제값에 팔려 조합원들이 낸 분담금을 일부라도 최대한 돌려주는 게 목표”라며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계속 둘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래미안 리더스원은 같은 면적에 보류지와 비슷한 층수(6층)가 지난해 9월 36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이후 현재까지 이 면적대에서는 매매 거래가 없다.
서울 반포동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삼호가든맨션3차)도 지난해 10월부터 네 차례나 보류지 입찰 공고를 냈다. 전용 84㎡ 보류지 3건의 기준입찰가는 33억원으로 첫 입찰 후 주인을 찾지 못해 세 번 더 공고를 냈다. 그럼에도 기준입찰가를 내리지 않고 33억원을 유지했다. 이 물건은 4차 공고가 난 지난 1월에서야 겨우 주인을 찾았다.
김제경 투미 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보류지 물건은 보통 시세보다 싸게 내놓지만 미분양이 없어 재정적 부담이 없는 강남권 조합들은 서둘러 매각할 이유가 없는데 30억원이 넘는 현금을 한 번에 낼 수 있는 매수자도 드물어 거래가 쉽게 성사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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