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21년(1965~1986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65·사진)이 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었다. 아버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철권통치와 거리를 두면서 동시에 젊은 유권자층을 공략해 표심을 끌어모았다.
필리핀 ABS-CBN 방송은 이날 선거관리위원회의 비공식 집계를 인용해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가 1754만 표(개표율 53.5% 기준)를 획득해 2위 후보인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57)을 2배 이상 격차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개표율이 절반을 넘은 만큼 마르코스 주니어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부통령은 마르코스 주니어의 러닝메이트이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43)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당선되면 36년 전 민중봉기(피플파워)로 축출된 마르코스 일가가 정치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반대파를 고문하는 등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높았다. 100억달러(약 12조원)가량을 부정 축재했다는 불명예도 떠안았다. 마르코스 일가는 1986년 민중봉기로 축출돼 하와이로 망명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1991년 귀국해 정계에 복귀했다. 마르코스 가문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루손섬 북서부의 일로코스노르테에서 하원의원을 거쳐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냈다. SNS를 활용해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를 공략한 것이 주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선거 내내 공식 대선 후보 토론에 불참했다. 일가의 부정 축재와 탈세 의혹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전기요금 인하 등 포퓰리즘 정책을 홍보하고 인터넷, 도로 등 인프라 개발 공약을 밀어붙여 젊은 층에 추진력 있는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이날 선거에선 대통령과 부통령을 비롯해 상원의원 13명과 하원의원 300명도 함께 선출했다. 지방 정부 공직자 1만8000명도 뽑았다.
이날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불루안 자치구역에 설치된 투표소에선 괴한들이 총기를 발사해 경비요원 3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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