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위기다. 가정은 공동체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1인 가구는 가정이라 불리지 않는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가구원수가 1970년 5.2명이었으나 2020년엔 2.3명으로 줄어들었다. 1인 가구가 2020년 전체 가구의 31.7%를 차지할 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1인 가구 증가로 전체 가구 수는 늘고 있지만, 3인 이상 가구는 비율도 수도 감소하고 있다. 가정이 사라지고 있다.
1인 가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20대다. 30대까지 합치면 전체 1인 가구의 3분의 1을 넘는다. 지난 수년간 집값이 폭등하면서 미혼 자녀가 주택을 증여받거나 무주택자로서 집을 분양받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분가하는 경우가 늘었다지만, 젊은 1인 가구의 증가는 기본적으로는 비혼(非婚), 만혼(滿婚)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혼인해야 출산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저출생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비혼, 만혼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원인을 안다고 추세를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문제다. 비혼, 만혼 현상의 문화, 사회, 경제적 원인이 단기간에 바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인 성불평등 환경은 갈 길이 너무 멀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국제적 지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영국의 경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상의 10번의 결과 발표에서 한국은 부동의 꼴찌다. 하지만 그래봐야 29개국 중 꼴찌이니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유엔개발계획(UNDP)의 성 불평등 지수가 있다. 162개국에 대한 작년 발표에서 한국은 11위를 차지했다. 순위만 놓고 보면 양호하지만, 지수를 뜯어보면 실망스럽다. 5개 항목이 지수를 구성하는데, 그중 청소년 출산율이 매우 낮은 것이 순위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청소년 출산율은 15~19세 여자 청소년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나타낸 것으로, 한국은 이 수치가 1.4명에 불과해 압도적 1위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지표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性) 격차 지수다. 성 격차 지수는 2021년 156개국에 대해 발표됐고, 한국은 102위였다. 이 지수는 경제, 교육, 건강, 정치 분야에서 남성 대비 여성의 달성도를 백분율로 나타내고 그 평균을 구하는데, 교육과 건강 분야의 성 격차는 나라마다 큰 차이가 나지 않아 경제와 정치 분야의 순위 결정력이 크다. 한국은 경제 분야 123위, 정치 분야 68위였다.
지수가 처음 발표된 2006년과 비교하면, 성 격차 자체는 축소됐지만 상대 평가에서 밀렸다. 그나마 정치 분야 지표에 ‘지난 50년간 여성 행정부 수반의 재임 기간’이 최고의 가중치로 포함돼 있어 정치 분야 순위가 2006년 84위에서 2021년 68위로 오르지 않았다면 결과는 더 안 좋았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다. 경제 분야를 구성하는 지표 중 비슷한 업무에 대한 임금 격차, 근로 소득의 전반적 성 격차가 모두 100위 밖이지만, 특히 입법공무원, 고위 임직원 및 관리자 비율은 모든 지표 중 가장 낮은 등수인 134위다. 한국보다 종합 등수가 좋은 나라에 소득 수준이 낮지만 남녀 격차는 작은 나라가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이상인 나라만 추려서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 성 격차도 작은 경향이 있어,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나 3만달러를 기준으로 모아보면 한국의 상대적 위치는 전체에서보다 더 밀려난다.
성 격차 지수를 분석해 보면,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시점보다 경제생활을 영위하면서 겪게 될 성 격차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혼, 만혼 현상과 관련해 최근 젊은 세대의 젠더 갈등에 주목하는데, 젊은 남성은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성 불평등 환경에 동의하기 어렵고 젊은 여성은 앞으로 경험할 성 불평등에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 갈등의 한 원인일 수 있다. 성 격차를 줄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줄여야 해결될 문제가 많다면 하던 대로가 아니라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것도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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