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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PEF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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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05월 01일 21:2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아주 오래 전 미국 경영대학원(MBA)의 입학허가서를 받아들고 기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별 목표 없이 하루 하루 놀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군대를 갔다 온 뒤 복학 후에 난생 처음으로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막연히 생각했던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라는 목표가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3년 넘게 밤낮과 주말도 없는 살인적인 격무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꾹 참고 열심히 일해서 인정 받으면 유학 자금을 지원해주겠다는 회사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입학 허가서를 받은 후에 주위에서 "너 미국 MBA 과정에 가서 뭘 배우고 싶냐"고 물었을 때 저는 재무 분석, 그 중에서도 밸류에이션을 배우고 싶다고 얘기했었습니다. 실제로 유학 시절에 다른 과목들은 과감히 포기했어도 Corporate Finance 시간만은 열심히 챙겨 듣고 공부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DCF(Discounted Cash Flow) 기법으로 회사의 기업가치를 계산하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어떤 산업과 회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조사한 후에 엑셀에 데이터를 늘어놓고 회사의 미래 재무제표를 프로젝션한 뒤 각종 이론과 기법으로 NPV(순현재가치), IRR(내부수익률)을 구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고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걸 배우려고 비싼 돈을 내고 MBA를 오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에 우연한 기회와 인연으로 인해 첫 직장에서 지원받은 학자금을 상환하기로 하고 당시에 한국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분야였던 글로벌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의 홍콩 지점에 입사하게 되었을때도 '선진 재무 기법'을 열심히 배워서 금융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 PE업에 입문하면서 저는 자문업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투자업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투자를 해오면서 그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DCF는 한번도 제대로 써 먹은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PE가 회사를 인수할 때 어떻게 기업가치를 산정하고 인수가격은 어떻게 정해지게 되는 것일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아래 몇 가지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면서 독자들에게 제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① 얼마면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가?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은 인수희망자가 기대하는 투자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가 밸류에이션의 적정선인가에 대한 분석입니다. 이를 위해서 인수 대상 회사의 미래 전망에 대해 심도 있고 광범위한 조사와 공부와 분석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대상 회사의 향후 5년간 재무 제표를 프로젝션하게 되는데, 회사의 기업가치와 직결되는 핵심 드라이버들을 도출해내고 각각의 드라이버들에 대하여 여러 가정들을 대입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시나리오가 전개되었을 때 5년후 회사의 기업가치가 어느정도 될 것인지를 가늠해 보는 작업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아주 기초가 되는 작업으로서 어떤 조건이면 딜을 하고 하지 않겠다는 가이드라인은 주지만, 어떻게 하면 딜을 되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은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들이나 주니어 프로페셔널들은 마치 이 부분이 밸류에이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석을 할 줄 아는 본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어이없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협상 상대가 이해도 하지 못하는 복잡한 숫자와 재무 분석 기법을 늘어놓으면서 말이죠. 이런 사람들은 투자업에 직접 종사하기보다는 외부에서 고객들이 요구하는 특정한 분석과 업무를 외주 받아서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② 남이 얼마나 높은 가격을 쳐줄 것인가?

경쟁 입찰의 경우에는 적정 가치가 얼마냐를 떠나서 최종 낙찰가격이 곧 인수 가격이 됩니다. 제 아무리 탄탄한 재무 이론과 빈틈 없는 논리로 대상 회사의 적정 가치가 얼마인지 어필을 해도 다른 입찰자가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써버리면 거기서 게임은 끝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인 가치 평가보다는 경쟁 입찰자가 과연 어느 정도의 가격을 제시할지에 대한 고려와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 인수 희망자들 중 누가 제일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될까요? 자금 동원 능력이 얼추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는 다른 인수자들이 모르는(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를 알고 있거나, 아니면 어떤 이유에선가 그 딜을 제일 간절하게 원하는 곳일겁니다. 과거에는 인수자가 M&A나 밸류에이션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을 써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다른 인수자가 모르는 가치를 발견하려면 대상 회사와 산업에 대하여 누구보다 깊은 이해와 인사이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그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 딜에 대해서 다른 인수희망자들보다 더 열심히 준비를 하고 공부를 했거나, 아니면 특별한 네트워크나 인맥으로 회사에 대한 고급 정보를 획득했거나 중에서 하나 이상은 해당이 되어야 하겠죠.

저희 회사가 메디트라는 치과용 구강스캐너 제조업체에 투자했을 당시 PE업계와 M&A시장에서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6배라는 인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듣기로는 저희와 같이 마지막까지 인수를 검토했었던 글로벌 PE사 두 곳에서도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이유로 투심위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있었고 심지어 저희 회사 내부 투심위에서도 같은 이유로 승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그 투자건을 담당했던 파트너와 실무팀에서는 결코 그 밸류에이션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원인은 저희가 산업과 회사에 대하여 엄청난 양의 리서치와 조사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외부 컨설팅을 전혀 받지 않고 저희 팀원들이 수십명의 국내외 덴탈 전문가들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치과 진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는 것과, 그 디지털화에 스캐너는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이라는 것과, 메디트의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에 영업과 마케팅만 강화한다면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3가지의 명제에 대해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정식 매각 프로세스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회사를 알고 있었고 조사와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부터 준비를 시작한 다른 인수자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회사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준비를 먼저 시작하고 더 열심히 공부한 것 이외에 저희가 특별한 재무 분석이나 밸류에이션 기법을 사용한 것은 없었습니다. 최근에 메디트와 동종업계의 유사기업들이 EBITDA 20~30배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인수 대상 회사에 대해 똑같은 정보와 이해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는 인수자가가 그 딜에 대해서 얼마나 간절한지가 인수 가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여기서 간절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인수자 입장에서 전략적/정치적인 이유로 그 딜을 꼭 해야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수자의 내부적인 사정이라 외부에서는 정확하게 파악할 길이 없지만 여러 경험을 근거로 충분히 유추는 해볼 수 있습니다. 담당 실무팀들의 의견과는 상관 없이 최고 의사결정자 레벨의 의지에 의해서 공격적인 탑다운 의사 결정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전략적투자자(SI)들과 재무적투자자(FI)들이 같은 딜을 놓고 경쟁할 경우 인수를 바라보는 시각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독자분들도 알고 계실겁니다. 그런데 같은 FI들끼리도 입찰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FI들끼리라면 비슷한 학교를 졸업하고 비슷한 직장 경력을 가진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기법으로 밸류에이션 모델을 만들텐데 어째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일까요? PE의 경우에 펀드의 투자소진에 대한 강한 압박, 어떤 특정 국가에 풋프린트를 가져가기 위해 교두보가 될 만한 투자를 꼭 해야하는 상황, 특정 인물과 그룹이 조직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선택, PE사들간의 자존심과 경쟁 심리 등이 의외로 인수 가격 책정에 매우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투자 활동이 거의 없었던 글로벌 PE펀드들 중 한국계 인사가 본사 최고경영진에 선임된 후에 비로소 한국에서 공격적인 밸류에이션으로 큰 딜을 성사시키기 시작한 것이 위의 가설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③ 파는 사람이 얼마면 만족할 것인가?

경쟁 입찰이 아니고 단독 딜소싱 상황일 경우는 경쟁이 없어서 간단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훨씬 더 복잡합니다. 거기다가 매도인이 이미 매각을 결심하고 인수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매각 의사가 확실치 않았던 매도인에게 먼저 다가가서 설득하여 딜을 성사하려고 하는 경우는 그 난도가 최고에 달하게 됩니다. 매도인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팔겠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창업자가 평생동안 일구어온 사업을 매각하는 경우에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경제적/이성적인 면과 더불어 비경제적/감정적인 면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리고 매도인이 재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재무적인 이론이나 밸류에이션 기법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매도인이 "이 정도면 잘 팔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가격이 최종 인수 가격이 됩니다. 매도인은 동종업계 또는 비교 대상 회사의 상장이나 매각 가치를 마음 속에 두고 있거나 또는 딱히 아무런 정보와 논리가 없이 막연히 500억, 1000억, 5000억, 1조원과 같은 특정의 숫자를 염두에 두고 협상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인간의 만족 수준은 기대 수준에서 달성 수준을 뺀 것에 반비례합니다. 따라서 많은 경우 초기에 기대 수준이 어떻게 세팅되느냐가 최종 제시 가격에 대한 수용도와 만족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기대 수준의 세팅에는 매도인 주위에서의 조언과 발언이 크게 작용하게 되는데 정식으로 주관사를 선정하지 않더라도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는 반드시 주변에 상의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중소/중견 기업 오너의 경우 가족/친지들이나, 오랫동안 같이 근무해온 핵심 임원이나, 회사 일을 도와주는 회계사나 변호사나 또는 금융기관 종사자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회사 매각이라는 것이 워낙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임에 비해서 직접적인 경험은 전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 먼 곳의 '전문가'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게 됩니다.

여기에 첫번째 문제는 그런 조언자들의 상당수가 M&A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의 주주가 바뀌게 되면 본인이 불이익을 볼 거라 생각하고 딜을 방해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인센티브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수자가 단독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매도인에게 영향을 주는 핵심 조언자가 누구인지 초기에 파악하고 그 조언자에게 제대로 조언을 해서 결과적으로 매도인들이 현실적인 기대 수준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④ 높은 가격이 전부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만일 매도인이 생각하는 매각 조건에 가격이 전부라면 인수자 입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아비트라지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게 되어서 주식 투자와 같은 퍼블릭에쿼티에 비해서 프라이빗에쿼티(PE) 투자의 메리트가 무색하게 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남녀간의 만남의 성사가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와 학벌과 재력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하면 그런 세상이 너무 희망 없고 재미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제 경험에 의하면 가격은 매도인의 의사결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유일한 요소가 아니고 특히 의사결정이 최종 단계로 가면 갈수록 오히려 비가격적인 요소에 의해서 매각 의사 결정이 내려지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특히 매도인이 주식을 전량 매각하지 않고 투자자와 공동 주주로 남는 경우는 당장의 밸류에이션 이외에도 인수자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인가, 미래에 회사의 가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지분 매각 후에 매도인이 회사에서 어떤 역할과 위상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와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협상 과정에서 일관된 언행으로 매도인에게 신뢰를 꾸준하게 심어주고, 회사에 대한 진단과 의견을 정확히 공유하고, 투자 후 밸류업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게 되면 막상 가격 협상은 의외로 수월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프라이빗에쿼티(PE) 투자와 퍼블릭에쿼티(주식) 투자의 다른 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주식투자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의 게임인 반면 PE투자는 명확한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매도인과 매수인 양측이 조건에 합의해야지만 투자가 성사되는 게임입니다. 밸류에이션도 예외가 아닙니다. 회사의 적정 기업가치가 얼마냐라는 주제를 놓고 매도인과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난도가 매우 높은 일입니다. 특히나 저희 회사처럼 중견기업의 바이아웃(경영권 포함 인수)을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는 중간에 매각주관사나 대리인 없이 매도인인 창업자들과 직접 밸류에이션을 협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에게 아무리 뛰어난 금융 지식과 기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설명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 없다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렇다고 비즈니스 스쿨에서 배운 각종 재무와 밸류에이션 기법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자로서 기초가 되는 사고 체계와 분석 프레임워크를 갖추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지식들입니다. 그러나 고급 재무 기법은 나쁜 딜을 피하기 위해서는 요긴하지만 좋은 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10년 PE 경험의 결론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좋은 가격에 딜을 할 수 있느냐는 비재무적인 부분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복잡한 재무 분석보다는 회사의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미래의 주주로서 회사의 전략과 오퍼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인사이트가 경쟁력 있는 인수 가격을 제시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또한 매도인과의 협상력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거기에 더해서 매도인의 의중과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는 공감 능력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매도인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을 이끌어내는 마지막 비밀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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