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처럼 ‘아빠 찬스’ 등으로 논문 공저자가 된 학생이 82명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고등학생들이 제출한 논문 상당 수가 돈만 내면 논문을 실어주는 이른바 ‘부실 학술지’에 투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27일 한국경제신문이 2010년 이후 해외 학술지나 학술행사를 통해 발표된 고교생 연구물 30개를 무작위로 분석한 결과, 이 중 절반인 15개가 부실 학술지·학술행사에서 발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운영하는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은 유명 학술지와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는 ‘위조 학술지’, 돈만 지불하면 무조건 연구물을 게재하는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 등으로 의심되는 학술지에 ‘주의’ 등급을 매기는데, 30개 연구물 중 6개가 ‘주의’ 등급 학술지에 발표됐다. 또 9개 연구물은 돈만 받고 가짜 학술행사에서 연구물을 발표하는 단체인 와셋(WASET)이 주관한 허위 학술행사에서 발표됐다.
부실 발표로 확인된 연구물은 30개 중 절반에 그치지만, 실제 부실 발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시스템이 모든 부실 학술지·학술행사를 걸러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고등학교는 학생이 논문을 작성해 해외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수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전국단위 자율고인 A외고의 B교사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재학생이 1저자로 등재된 연구물 83개를 해외 학술지에 투고하거나 해외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한 해에 적게는 6개에서 많게는 24개까지 연구물을 공장식으로 찍어낸 것이다.
이 교사가 지도한 연구물 83개 중 36개는 부실한 경로로 발표된 사실이 확인됐다. 예를 들어 2015년 A고등학교 학생 2명과 B교사가 작성한 생명의료공학 분야의 논문은 ‘International Journal of Biomedical Engineering and Science’라는 학술지에 투고됐다.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에서 ‘주의’ 등급을 받은 학술지다.
2016년 A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모씨는 “주제 선정, 자료조사, 데이터 추출, 집필 등 대부분의 과정은 학생들이 직접하기 때문에 이름만 올리는 ‘대필’ 연구는 아니었다”며 “지도 선생님은 코딩 등 막히는 부분을 도와주고, 논문 발표할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선정했다”고 했다. 또 “정부 규제 전까지는 논문 성과를 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 등에 게재해서 대학 입시에 많이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와 같은 ‘끼워넣기 공저’ 사례도 부지기수다. 대학 교수나 석박사가 진행한 연구에 고교생 1명이 참여해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식이다.
예를 들어 전국단위 자율고인 C학교의 학생이 저자로 이름을 올린 2011년 의학 분야 논문은 이 고교생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저자가 모두 지방국립대 의대 교수거나 석박사였다. 논문에 참여한 교수와 석박사는 이후 추가 저작물이 있지만, 이 고교생은 논문 한 건을 끝으로 어떤 연구물도 내지 않았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