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넌과 그의 뮤즈 오노 요코. 베트남전쟁이 점점 격화하던 1969년 3월 20일. ‘세기의 커플’로 불리던 이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소식이 비틀스 팬은 물론 세계 언론에 화제가 될 것을 알았던 이들은 세계 평화를 위한 아주 특별한 시위를 벌인다. 2주간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라는 뜻의 ‘베드 인 포 피스(Bed-Ins for Peace)’다.
허니문의 첫 1주일인 3월 25일부터 31일까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힐튼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702호실)에서, 다음에는 캐나다 몬트리올 페어몬트 더 퀸 엘리자베스 호텔에서 이어갔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세계 각국 언론을 호텔 객실에 초대해 ‘세계 평화’를 외쳤다. 파자마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머리맡 유리창에 큰 글씨로 ‘헤어 피스(hair peace)’ ‘베드 피스(bed peace)’라는 글귀를 써 붙였다. 이들의 평화 시위를 담은 이야기는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로, 또 ‘발라드 오브 존 앤 요코’의 가사로도 쓰였다. 이 방들은 반세기의 시간을 건너 역사적 공간이 됐다. ‘존과 오노의 방’으로 영구 재현돼 이들의 정신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텔 스위트룸. 그 럭셔리의 가치는 단지 호화로운 치장과 호사스러운 서비스만으로 매겨질 수 없다. 어떤 스위트룸은 단 하룻밤만이어도 거기 머무른 유명 인사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의 5성급 호텔인 로텔(L’otel)에는 ‘오스카 와일드 스위트’가 있다. 이곳은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낡은 벽지에 신세 한탄을 하며 남은 생을 보낸 허름한 하숙집. 1828년 문을 연 이곳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고 새로 단장하면서도 와일드를 기념하는 소품과 장식들은 그대로 두었다. 물론 낡은 벽지는 걷어냈다.
영국 런던 사보이호텔엔 ‘모네 스위트’가 있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이곳에서 다른 투숙객들과 방, 화장실을 공유하며 템스강과 런던 그림을 70여 점 그려낸 장소다. 지금은 템스 강변과 런던의 랜드마크 건물들, 워털루 다리의 야경을 내다볼 수 있는 독립된 호텔 방으로 쓰인다. 미술 애호가와 모네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스호텔의 ‘방갈로20’은 마릴린 먼로의 인생이 담긴 스위트룸이다. 먼로는 1952년 처음 이곳에 머물렀고, 이후 1958년부터 3년간 극작가 아서 밀러와 살았다. 먼로와 함께 영화 ‘사랑을 합시다’를 찍은 이브 몽탕은 그녀의 옆집인 방갈로21에 부인 시몬 시뇨레와 함께 살았다. 이 호텔의 수영장은 ‘더 핑크 팰리스(핑크빛 궁전)’로 불리는데, 이글스의 대표곡 ‘호텔 캘리포니아’가 담긴 앨범 표지 배경으로 유명하다.
록음악 팬들에겐 할리우드의 선셋마르키스호텔이 ‘죽기 전에 머물러야 할 호텔’로 꼽힌다. 레드 제플린, 에어로스미스, 건스앤로지스 등 록스타들이 수도 없이 드나들던 곳. 특히 ‘빌라41’은 롤링스톤스의 키스 리처드가 가장 좋아한 방이다. 이 방에서 두 개의 앨범을 완성했고, 담뱃재를 자주 바닥에 떨어뜨린 나머지 카펫을 갈아줬다는 일화도 있다.
지금은 하드록호텔로 불리는 영국 런던의 컴버랜드호텔에는 ‘지미 헨드릭스 스위트’가 있다. 요절한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노팅힐의 사마르칸트에서 죽은 채 발견됐을 때 이 호텔이 그의 거주지였다. 그의 40주기였던 2010년 빈티지 벽지와 그를 상징하는 무늬들, 기타, 1960년대 음악잡지 NME 등으로 방을 장식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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