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소설희 쏘왓 대표]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며 흰 종이를 펼쳐놓고 고민을 적을 때가 있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뭘 잘하지? 현실적으로 먹고 살기 좋은 직업은 뭐지? 빼곡히 적다가 문득 ‘옷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패션은 의식주에 해당되는 업계니까 절대 망하지 않겠지. 그렇게 나는 패션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의류학을 공부해보니 업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수많은 경쟁자들로 인해 괜찮은 대우를 받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매일같이 야근에 내가 꿈꾸던 크리에이티브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말단 사원이었던 나는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창의적인 패션제품을 마음껏 만드는 삶, 그리고 ‘누군가 내 작품을 인정해 준다면’ 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창업에 도전했다.
사업계획서, 그 낯설고 어려운 이름
창업의 꿈을 품고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뒀다. 당장 이렇다 할 계획도 없었는데 말이다. 모아 둔 돈이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바닥이 보였다. 연초가 지나 국가창업지원사업들이 거의 끝난 시점이었는데 기적적으로 상/하반기 두 번 모집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신사업 창업 사관학교’가 남아 있었다. 신사업 창업 사관학교는 좋은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예비창업가들에게 창업교육, 창업체험, 창업지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나의 첫 지원사업은 지금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업계획서로 1차에 합격하고 사업계획서에 대한 지적으로 가득 찬 면접심사를 거쳐 운 좋게 통과됐다. 당시에는 심사과정이 너무 힘들어 다시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이 지나면 꼭 지원사업이 없어도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성공해야지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사업을 계속 이어오면서 다양한 주제의 지원사업에 도전할수록 ‘쏘왓’이 성장한다는 것을 느꼈다.
사업계획서, 어떻게 써야할까?
내가 지원했던 국가, 민간 지원사업은 이런 것들이 있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 크라우드펀딩 지원 사업, 생활혁신형창업지원사업, BAT두드림,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풀씨사업 그리고 초록열매 등등… 사업의 특색과 성격은 제각각이었지만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방법은 모두 같았다. 수차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며 나만의 노하우도 꽤나 쌓여갔다.
혹자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너무 까다롭고 어렵다는 말을 한다. 몇 장의 종이로 이 사업의 당위성과 사업성을 판단해야 하기에 작성이 까다로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규칙을 갖고 차근차근 순서에 맞춰 작성하면 절대 어렵지 않다. 지금부터 나만의 소소한 팁을 공유해 볼까 한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사업공고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사업공고를 PDF 파일로 다운받아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 표시를 하며 읽는다. 사업 공고에는 이 지원사업을 통해 사업체에게 바라는 바, 평가 항목, 평가 항목에 따른 배점 분배 등이 들어있다. 마치 시험문제로 무엇이 나올지 알려주는 쪽집게 요약집과 같다.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중요한 키워드와 사업 목적을 캐치
유의사항, 진행시기 등에 대한 정보도 꼼꼼히 읽어 지원하지 못하는 결격사유가 없는지 체크한다.
평가기준에서 배점이 높을수록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물론 최대한 모든 배점을 획득할 수 있도록 평가항목에 부합되는 내 사업의 장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주요 키워드와 평가항목을 살펴봤다면 이제 그것들을 잘 조립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에서 사업계획서 양식을 주기 때문에 글을 작성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가장 어려운 것은 어필하고자 하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모두 담는 것. 이럴 때 나의 경우에는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마인드 맵을 사용한다.
하고자 하는 사업 아이템을 중심에 적고 여러 갈래를 뻗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평가항목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용을 더 추가한다. 그렇게 나열된 내용을 사업계획서 양식에 맞게 분류한다.
이렇게 마인드맵을 작성하고 나면 사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필요한 것들과 어떤 절차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지가 한눈에 보이게 된다. 그러면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세우게 되고 진행 절차를 구체화해 사업 진행 계획을 꾸리면 된다. 예를 들어, 버려진 옷을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구상하였는데 버려진 옷을 해체하고 재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미리 샘플실을 수배하고 구두계약을 통해 손재단 하는 것으로 해결 방안을 찾았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순서는 한눈에 보기 쉽게 일정표를 작성하였다. 특히 진행 일정은 사업계획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항목이므로 실제 진행 일정이 한눈에 보이도록 작성하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만 작성해도 꽤 훌륭한 사업계획서가 완성되는데 진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열정을 보여준다면 합격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 그 쐐기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진행 상황에 대한 공유다.
지원사업을 통해 패션 제품을 만든다면 패션 제품의 디자인, 제품이름 더 나아가 종이가봉 샘플까지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앱이나 플랫폼을 제작한다면 플랫폼의 이름, 플랫폼의 예상 디자인 정도는 이미징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창업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예비 창업가라면 브랜드 네임을 상표등록 출원중이라는 현황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식당을 창업한다면 판매할 음식을 미리 만들고 어떻게 플레이팅 할 것이며 가격은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를 사진으로 보여줘도 좋다. 이렇게 적극적인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것은 이 사업에 지원을 해줘도 헛되지 않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부끄럽지만 구체화 했던 아이템의 디자인을 첨부해본다. 당시 사업계획서에는 디자인을 첨부하였고 발표를 하며 사용할 재료들을 보여줬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때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 으로 이루어진 SWOT 분석을 많이들 이야기한다. 나 역시 이 SWOT 분석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 내 사업의 강점을 어떻게 어필하고 약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사업계획서에서 약점이나 위협점을 따로 요구하지 않는 이상 절대 스스로 기재하지 않는다. 물론 발표평가 전에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SWOT 분석은 완료한다. 발표평가가 시작되면 질의응답시간에 내가 우려했던 약점에 대한 질문이 반드시 나오는데 그때 자신 있게 준비해놓은 해결책을 말씀드린다. 이렇게 하면 갑작스런 지적에도 자신 있게 말할 만큼 사업에 준비가 잘 되어있구나 하는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사업계획서를 모두 작성했다면 예산계획은 예상 외로 쉽게 작성할 수 있다. 우선 내가 지원한 지원사업에서 필요한 비용을 모두 지원해주는지, 자기부담금이 일부 포함되어야 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내가 부담해야 하는 자기 부담금이 얼마나 되는지, 한 항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꼼꼼히 살핀다.
이제 예산을 책정 시 앞서 작성한 일정표를 참고하는 게 좋은데, 일정에 따라 어떤 비목이 필요한지, 얼마만큼의 예산이 필요한지 확인해가며 수치를 매긴다. 때에 따라서는 프리랜서 마켓이나 전문 업체에 견적서를 요청하여 시세에서 벗어나지 않는 예산을 짜는 게 좋다.
지원금만큼 내 사업 진심인지가 중요
사업계획서를 전략적으로 잘 적는 것만큼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에 진심이 담겨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지 지원금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을 사업을 꾸며서 낸다면 사업계획서에 진실성이 담기지 않는다. 더욱이 지원사업이 마무리 되는 시점, 계획했던 사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지원 기관에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동일 기관의 새로운 지원사업에 참가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돈이 목적이 아닌 내 사업체의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시길 바란다.
소설희 씨는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의류학을 전공했으며 아동복 브랜드의 개발실에서 옷의 기획부터 개발 생산까지 실무를 익혔다. 현재는 환경을 생각한 패션브랜드 쏘왓을 운영하며 지구와 공생할 수 있는 패션을 창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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