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5일 16:2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근래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미국 국채의 수익률 역전이 화두가 되고 있다. 10년물 등의 장기 국채금리가 2년물과 같은 단기 국채금리보다 낮아지는 역전현상은 통상적으로 경기침체의 전조로 여겨진다. 수익률곡선은 숱한 경제현상들의 하나에 불과할 수 있고, 마치 통화당국 거물급 인사의 진의(眞意) 아닌 레토릭에 자본시장이 영향을 받는 것처럼, 이 수익률 이슈가 거꾸로 시장참여자나 경제주체들의 심리나 행동패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점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역전현상은 드물게 나타나고 역사적으로 경기침체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보니 섣불리 간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느 투자은행(IB)에서는 유가수준과 수익률곡선을 조합하여 더 신뢰도가 높은 모델을 제시하면서 향후 12개월 내에 미국의 경기침체가능성이 매우 높다고까지 말한다.
아직은 미국 중심의 강한 고용과 여기서 비롯되는 가계의 탄탄한 수입, 그리고 굳건한 소비활동이라는 좋은 그림이 유지되고 있지만, 채권시장이 보내는 메시지를 우리는 함부로 무시하기 어렵다. 시장금리는 정책과 펀더멘탈의 결과이기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맹신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장단기 금리차의 변화는 중요한 경기선행지표임이 경험적으로 증명되었고 경제데이터들은 늘 뒤늦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되새겨야 한다.
'경기침체'라는 것은 2개 분기 이상 이어지는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므로, 말 그대로라면 그 침체시점이 경제전문가들 주장에 따라 수익률 역전 후 6-9개월이건 12-18개월이건 간에, 머지않아 눈에 띄게 경제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경제형편이 가장 좋은 미국이 이러하다면, 우리나라의 기업실적과 신용도를 지켜보는 관점에서도 지금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제롬 파월과 미 연준은 Inflation fighter가 될 것
“인플레이션은 더 높은 가격과 더 높은 비용을 의미하며, 경제적 약자들에게 특히 더 많은 고통과 더 적은 고용을 주게 된다. 연준은 인플레 파이터가 될 것이다.”
미국 등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은 점차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기존의 공급부족과 물류난, 이연수요, 탈탄소화 및 에너지난 등의 요인 외에도, 팬데믹 이후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자리잡은 낮은 경제활동참여율, 이에 따른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과 임금상승 추세, 그리고 계속되는 주택임차료 상승세가 기존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근래에는 중국의 코로나 봉쇄, 우크라이나사태에 따른 상품시장 교란과 공급차질까지 겹쳐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대러 경제제재와 시장참여자들의 '러시아 기피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세계화 및 글로벌 분업체제가 쇠퇴하고 미국·유럽 중심의 서방과 중국·러시아 등 경쟁세력의 블록화와 대결구도가 심화될 것이니, 이 과정에서의 대규모 공급망 재배치는 글로벌 비효율과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킬 것이다.
미 연준은 여느 중앙은행들처럼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표방하고 있다. 현재 미국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고 좀처럼 완화될 조짐이 안 보이는 상황인지라 단기적으로 성장이나 고용을 희생하더라도 미래의 지속가능한 경제의 실현을 위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억제가 시급하다는 판단을 할 것이라 본다. 마침 지금은 실업률도 낮고 고용시장이 타이트한 상황이기도 하다.
금리인상이나 양적긴축과 같은 긴축통화정책은 미래의 경기침체 위험이나 자본시장 변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지금 연준의 입장에서는 '두가지 악(惡) 중 더 작은 것'일 것이다. 또한 정작 경기침체가 시작될 때 여전히 낮은 정책금리에 머물러 있다면 경기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2년 글로벌 경제를 관통할 키워드 “긴축”, 그리고 다가오는 경기침체리스크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으로 고착되면, 금리를 중립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경기침체의 조건을 만들지 않고서는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되돌리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인플레를 낮추고 경기침체를 피하는 연착륙은 언제나 어려웠다. 에너지가격이 고공대에 있을 때는 훨씬 더 그렇다.”
최근까지도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은 경기침체를 불러오지 않는 선에서 성장세를 완만히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의 주장과 전망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연준이 2020년 8월 새로 도입한 통화정책기준이 결정적인 실책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경제의 오버슈팅을 용인하여 인플레이션의 지속성을 확신하고 완전고용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다시 말해 사실상의 과열이 촉발될 때까지 완화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정책을 고집하는 바람에 인플레이션 통제에 너무 오랫동안 뒤쳐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이제는 경착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경착륙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플레이션 수준이 이미 연준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어서 이를 억제하기에 충분한 경제슬랙을 만들어내려면 실업률을 상당 폭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의 긴축을 단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업률을 끌어올려야 할 때 지난 75년간 연착륙을 달성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역사적 경험을 들고 있다.
제법 일리가 있어보이는 주장이다. 여기에다, 이제 막 금리인상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몇 가지 선행지표에서 이미 글로벌 경기가 하강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물가상승에는 각종 원인의 비용견인 인플레이션 성격이 동반되어 있어서 쉽게 해소되지 않을 인플레이션 그 자체가, 특히 에너지·원자재·식량 부족과 결합되어 성장성을 더욱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더구나 현재 미국의 정치적 환경이나 압력이 물가억제를 강조하다보니 연준의 긴축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또한 현재의 자산가격 전반에 과잉 유동성으로 형성된 버블과 부실이 내재해 있을 수 있고, 급격한 금융긴축은 큰 시장변동성뿐 아니라 기록적인 기업부채 수준과 맞물려 금융시스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전문가들은 현재의 인플레이션 수준과 성격을 볼 때 금리를 천천히 올린다면 소비자들이 지출을 중단하고 경기가 침체될 때까지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제롬 파월 의장도 내심으로는 미래의 더 큰 개입과 정책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경제를 빨리 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려면 성장과 고용에서 지불해야 할 대가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시장과 경제주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가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가계의 실질소득을 낮추게 되어 구매력이 저하되며 소비심리를 떨어뜨린다. 또한 금리가 높아지면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축소시키고 소비수요를 억제하며 기업투자를 위축시키는 등 실물경제의 경기모멘텀을 훼손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의 비등한 인플레이션과 급속한 통화긴축 예고, 둘 다 경제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으니 연준이 어떤 선택을 해도 언젠가 경착륙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연준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낮아져 그 무엇이든 이른바 '정책효과'를 거두기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우리는 경기침체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것이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임박하지 않다는 것일 뿐이다.”
경기후행지표일 수밖에 없는 Credit, 그래도 거시 방향성을 잊지 말아야
혹자는 글로벌이든 한국이든 기업이익 성장이 빠르게 둔화하는 조짐이 보인다면서 이는 경제사이클이 후반기로 접어드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말한다. 정말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것인지, 온다면 정확히 언제쯤일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높은 인플레이션과 느려지는 성장, 연쇄적인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은 우리가 향후 한동안 목격하고 감당해야 할 현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업신용등급은 실업률 등과 같이 전형적인 경기후행지표다. 경기변동의 효과가 기업의 수익성이나 차입금 변화에 가시적으로 반영되어야 신용등급이 움직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채권부도율과 신용스프레드도 보통은 경기침체기간이 끝나갈 무렵에야 높아진다. 신용평가가 경기변화를 선행할 수는 없겠지만, Bottom-up으로 실물경기를 '정확히'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이전보다는 반발짝 앞서는 시그널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필자는 고민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Top-down의 거시경제 방향성을 잊지 않고 늘 준비돼있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서, 한국신용평가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님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