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2일 04:0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평범한 대학생이 글로벌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가 되려면 어떤 코스를 밟아야 할까. 당연히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직접 창업을 하는 게 아니라면, ‘될성부른’ 로켓에 어떻게든 올라타야 한다. 결제시스템 제공업체 포인트(Poynt)의 창업 멤버였던 박지현 상무는 운이 좋았다. 그러나 그가 ‘큰물’에서 기회를 모색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운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포인트는 페이팔 마피아로 분류되는 페이팔·구글 임원 출신 오사마 비디어(Osama Bedier)가 2014년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회사다. 소상공인들을 위한 만능 결제시스템이 없던 7년여 전 미국 시장에 이 서비스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시가총액 138억달러(약 17조원)에 이르는 인터넷서비스 업체 고대디(GoDaddy)에 인수됐다. 1997년에 설립돼 인터넷 도메인 제공 등을 주력으로 했던 고대디가 기업용 서비스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포인트를 사들였다. 박 상무는 현재 고대디 커머스사업부(옛 포인트)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다. “포인트의 초기 창업부터 비디어와 함께 베이글 가게에 앉아 소상공인의 하루 일과를 지켜보며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했다.
◆박사과정 중 만난 기회.."무조건 잡겠다" 결심
그는 2000년대 초 서울대에서 학사 및 석사과정을 마친 ‘토종’이다. 비 오는 날에 신발이나 옷이 젖지 않도록 디자인하는 방법을 궁리하던 아이였던 그는 “종종 막연하게 실리콘밸리에 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곤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돌이켰다. 남편의 유학을 계기로 미국에 건너왔다.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정보학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다. 조교로 일하며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에 대한 코스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관련 수업을 열어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학계와 산업계의 차이를 느꼈다. “막상 수업을 하다 보니 현장 경험이 없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디자인이 결정되는가’ 등을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더군요.” 방학 때 인턴십을 하기로 결심했다. 박사과정생이므로 연구자로서 인턴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다. 학계보다 산업계에 마음이 기울었던 것이다. 이때 오스틴에 있는 페이팔에서 3개월 인턴을 경험했다. 그의 다음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선택이다.
“2014년 3월, 페이팔 인턴 때의 매니저가 (비디어 대표의) 포인트 창업 소식을 알려주고 입사를 권했어요. 3개월 간 서로 맞는지 확인하는 일종의 시험기간을 거쳐 포인트에 네 번째 직원으로 합류했습니다.”
페이팔에서 8년, 구글에서 3년간 결제 관련 분야를 맡았던 비디어 대표를 비롯해 포인트의 창업 멤버들은 대부분 페이팔을 비롯한 핀테크 분야 리더들이었다. “모든 게 배움의 길로 느껴졌어요. 이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죠.” 문제는 그가 졸업을 하기 전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논문을 쓰고, 아이를 키우고, 스타트업을 시작해야 했다. “잠을 가능한 한 줄여가면서 버텼습니다.” 박사과정은 거의 ‘깡’으로 마무리했다. “동료 연구자들과 강제로 데드라인을 정하고 무조건 그때까지 결과물을 보내는 식으로 논문을 썼어요.”
◆창업 멤버의 과제는 ‘핵심 원칙 정립’
초창기 미국 스타트업의 설립 디자이너(founding designer)가 되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박 상무는 “정말 날것의 대화들이 오갔어요. 에둘러 좋게 포장한 말이 아니라 진짜 자기 생각을 스스럼없이 계속 교환했죠.” 인터뷰 과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박 상무는 자신을 내세우거나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무조건요. 적극적으로 계속 말을 하지 않고 시키는 것만 하는 범생이 스타일 직장인은 이곳 스타트업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는 3개월의 ‘합’을 맞추는 기간 동안 “기존 멤버들이 과제를 던져주며 자신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인지 여부를 주로 살펴봤다”고 했다.
첫 과제는 포인트의 브랜드, 사용자경험 디자인이 따라야 할 핵심 원칙들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박 상무는 “이를 통해 내가 어떤 관점에서 전략적 비전을 낼 수 있는지, 어떻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어떻게 팀과 소통하는지, 사용자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같이 이 로켓에 올라탈 열정이 있는지를 보여줘야 했다”며 “돌이켜 보면 이 과제를 통해 초기 멤버로서 주요 역량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던 과제였다”고 말했다. 그가 이 때 결정한 핵심 원칙은 이후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고 최종 제품을 만드는 데 끊임없이 밑바탕이 되었다. “새로운 팀 멤버가 들어오고 다양한 파트너와 일할수록 첫 번째 단계에서 정한 원칙이 의사결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소상공인에게 ‘슈퍼파워’를 주자” 비전
포인트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이 손님이 제시하는 다양한 결제 수단을 모두 받을 수 있고, 보기 쉽게 장부에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결제 시스템을 만들려 했다. 박 상무는 이를 “소상공인에게 ‘수퍼파워’를 주는 것이 목표였다”고 표현했다.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스퀘어와 같은 앱을 다운로드해서 결제에 이용하는 일이 흔해졌지만 그때는 (미국에서는 특히) 새로운 시도였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은 월마트와 같은 대기업들만이 누리는 특별하고 비싼 서비스였다.
또 이들이 창업할 무렵 페이팔로 결제를 받기 위해서는 오직 페이팔의 결제 처리방식을 써야 했다. 판매자들은 카드는 무엇 무엇을 받을 수 있고 페이팔은 받지 않는다 등등의 결제수단 안내를 상점 입구에 붙여놓곤 했다. 모든 종류의 결제를 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결제 창구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뜻이고 각각을 운영하는 데는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데이터가 통합되지 않아 저녁 무렵이 되면 점포를 닫아 걸고 번 돈을 정리하는 데만 몇 시간씩 쓰는 일이 허다했다. 페이팔 출신인 비디어 대표가 이 문제에 주목한 배경이다.
박 상무에게도 이 문제는 깊이 다가왔다. “외환위기 때 부모님께서 빵집을 차리셨는데, 가게가 8시에 문을 닫아도 결산을 하고 나면 12시에 집에 들어오셔야 했어요. 2014년 무렵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판매자 쪽은 전혀 개선이 되지 않고 10년 전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방식으로 일을 해야 했죠.”
포인트는 당시만 해도 대기업 전유물로 여겨지던 결제 및 데이터 관리 플랫폼을 누구에게나 제공하려 했다. 박 상무는 포인트 창업 멤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비전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데에 굉장히 시간을 많이 썼다”며 “비디어 대표가 자신의 비전에 대한 피치(간단히 설득하는 말하기) 연습을 계속 하며 다듬었다”고 돌이켰다.
◆ 창업 단계 지나도 ‘사용자 관찰’ 중요성 잊지 말아야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겪는 문제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박 상무는 “소비자로서 지낼 때는 결제과정까지만 눈에 보이고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다”며 “2~3명씩 팀을 짜서 판매자들의 행동을 출근부터 퇴근까지 관찰했다”고 했다.
서비스 사용자(판매자)가 무엇을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자신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지를 확인하는 인터뷰에도 공을 들였다. 공급자 입장이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디자인하기 위한 기초 다지기 작업이었다. 엔지니어들이 구축해 주는 간단한 초기 버전 서비스를 들고 가서 판매자들에게 제공한 뒤 관찰하고 업그레이드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비전을 명확하게 다듬고, 그것을 구성원이 모두 정확하게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죠.” 그는 비디어 대표가 포인트가 고대디에 인수된 지금도 “보고서를 보고 문제를 판단하지 않고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자 반응을 체크하고 테스트하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포인트 창업 이후 지난 7년간 결제 분야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카드 업계는 자기 선(MS)으로 긁는 방법, 칩을 꽂아서 인식하는 단계를 지나 무선으로 인식하는 NFC 방식, QR코드를 사용하는 방식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스퀘어와 같은 경쟁사들이 나왔지만 결제(payment processing) 서비스를 따로 신청·구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도어대시나 우버이츠와 같은 배달 앱들도 함께 써야 한다. 결국 판매자들이 여러 갈래의 결제 수단, 다양한 앱을 통합 관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여전하다. 포인트는 어떤 기술이 나와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future proof), 지속가능한 스마트 솔루션을 지향한다. “어떤 방식이 나오더라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 하면 모든 방법을 다 커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입니다.”
포인트는 하드웨어 단말기(스마트 터미널)와 운영체제(OS)를 함께 제공한다. OS는 서드파티 개발자들에게 열려 있다. 가장 자신에게 최적화된, 그러나 안전하게 결제가 이루어지는 앱을 사용자가 스스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개발자들이 포인트가 제공하는 오픈소스 코드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따라 앱을 만들어 포인트 플랫폼에 올리면 사용자는 단말기에 다운로드 받아 쓸 수 있고 개발자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다. “소상공인들이 어떤 방식이든 고객이 원하는 결제 수단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게 하자는 목표를 계속 지키려고 합니다.”
◆스타트업 창업 멤버, “늑대 무리에 끼어드는 일”
디자이너로서 그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되었을까. 비디어 대표는 초기부터 “팀을 너무 크게 늘리면 스타트업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커진다”는 생각이 뚜렷했다. 박 상무로서는 혼자서 사용자 디자인 관련 영역을 모두 맡아야 한단 얘기였다. “첫 3년간 솔로(1인) 디자이너였고 이후에도 많이 늘어봐야 3명 정도로 팀을 작게 유지했습니다. 대신 하드웨어 디자인 등은 아웃소싱을 많이 했고, 저는 사용자 경험을 어떻게 디자인할지에 집중했어요.”
고대디 합류 전과 후, 그의 역할은 비슷하지만 업무 방식은 다소 달라졌다. 박 상무는 “스타트업에서는 늑대 사이에서 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맨땅에 부딪히며 익혔던 반면 지금은 체계적인 환경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묘사했다. “고대디 인수 후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전보다 더 큰 그룹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부연했다. 고대디와 합병 후 1년 동안 이들은 결제 플랫폼인 ‘고대디 페이먼트’를 시작했다. 또 오프라인-온라인 솔루션을 연결하고, 채널 운영과 결제 관리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올인원(all-in-one) 솔루션을 내놨다.
◆ ‘안 된다’는 말에 갇히지 말라
지금은 글로벌 회사의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그는 비자 문제, 사회보장번호(SSN)를 받는 문제로 속을 썩이는 평범한 외국인의 처지였다. 처음 미국에 건너올 때 남편의 유학에 동반자비자(F-2)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비자로는 은행을 개설하거나 (특별한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 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박사과정에서 주 5시간 조교로 일하는 데 대한 수당을 받게 되면서 비로소 이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회보장번호(SSN)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박 상무는 “조교 임용 전 대학 내 공고가 난 모든 일자리를 다 지원했는데 (SSN이 없어) 전부 떨어졌다”고 했다. “해당 학과에선 외국인에게 고용허가를 내주는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려워했지만 계속 요청한 결과 조교 자리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소수자이기 때문에 ’원래 이렇다’, ‘원래 안 된다’는 것을 장벽이라고만 생각하면 위축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요. 개의치 않고, (뭔가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한) 한 사람으로서 계속 시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