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42곳이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한국거래소가 12월 결산 상장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 제출을 마감한 결과 유가증권시장에서 4개, 코스닥시장에서 38개 업체가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대상에 올랐다. 이들 기업이 이의를 제기하고 개선할 기회를 얻으면 퇴출을 면할 수도 있지만, 상장폐지가 확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적정’ 의견 못 받으면 증시에서 퇴출될 수도
감사의견(auditor’s opinion)이란 기업의 재무제표가 정확하게 작성됐는지에 대해 감사를 맡은 공인회계사가 제시한 의견을 가리킨다. 재무제표는 회사의 1년치 경영실적을 압축한 성적표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성적표는 기업 직원들이 직접 작성하기 때문에 투자자들로선 100% 정직하게 만들었는지 의문을 가질 만하다. 외부 회계 전문가가 재무제표를 꼼꼼하게 검증한 다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감사의견이다.감사의견은 네 종류로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이 있다. 적정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를 비적정으로 통칭한다. 적정은 기업이 회계처리 기준을 잘 지켰다는 의미다. 해마다 상장사의 99%는 감사의견 적정을 받는다. 적정이 나오는 게 정상이니 당연한 결과다. 다만 재무제표를 규정에 맞게 작성했다는 얘기일 뿐 재무상태의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는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한정은 적정 의견을 내긴 곤란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회계기준을 위반했거나 회사 쪽이 감사에 필요한 증거를 충실히 제공하지 않은 경우(감사범위 제한)가 포함된다.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은 유가증권시장에선 관리종목 지정, 코스닥시장에선 퇴출 사유다.
부적정이나 의견거절 판정을 받으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모두 상장폐지 사유다. 부적정은 재무제표가 회계처리 기준에 맞지 않아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의견거절은 감사범위 제한이 심각했거나 기업 존립에 의문이 들 정도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을 때다. 의견을 내고 말고 하는 게 의미가 없고 차라리 ‘노코멘트’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투자자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
상장사의 사업보고서, 감사보고서, 감사의견 등은 전자공시시스템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감사의견에서 적정을 받지 못한 기업에는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 상장사들의 1년 전 실적이 공개되는 매년 이맘때 증시에서는 퇴출당할 기업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감사보고서는 정기 주주총회 1주일 전까지 공시해야 하는데, 제출기한을 넘기며 우물쭈물하는 회사도 의심해봐야 한다. 비상장사는 적정 의견을 얻지 못해도 제재를 받지 않지만 투자자 유치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