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 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작가 김연수는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독자들에게 불과 30초 만에 소설 잘 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이같이 적었다. 감정은 언어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되는 것은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르는 것들뿐이다.
봄에 관해 쓰고 싶다면,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쓰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먹었는지를 써야 한다. 사랑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말아야 한다. 사랑할 때 연인과 함께 걸은 길, 먹은 음식, 본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적어야 한다. 다시 한번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봄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19가 이어지며 우리의 사회적 거리는 여전히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만, 마스크를 비집고 들어오는 달큰한 꽃향기는 봄이 우리 곁에 성큼 가까이 왔음을 알려준다. 가수 10㎝(십센치)는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몽땅 망해라”라며 손잡고, 팔짱 끼고, 끌어안으며 설레는 연인들에게 제발 좀 떨어지라고 수년째 노래로 원망을 퍼붓고 있지만,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 웃어넘기자.
그러고 모두 손에 자그마한 꽃다발을 들자. 꽃말 따위는 몰라도 좋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좋다. 별다른 이유 없이 받아 든 꽃다발에도 행복해질 테니. 저녁이 되면 손을 잡고 가로등 켜진 꽃길을 걸어보자. 서울 여의도까지 나가도 좋고, 집 근처 아파트 단지도 좋다.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 한 캔 옆에 놓고 벤치에 앉아 올려다본 벚꽃을 망막에 오래도록 새겨보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집에 돌아가 자세히 일기장에 적어보자.
인생 중 하루를 봄과 사랑과 꽃과 연인으로 가득 채운 우리 모두는 소설가가 될 테니.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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