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역대급 실적을 내놨지만, 주가는 여전히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7일 장 초반 52주 신저가를 다시 썼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드라이브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투자심리가 악화돼 외국인과 기관이 물량을 쏟아내는 탓이다.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에 외국인과 기관이 쏟아내는 물량을 개인투자자(개미)가 모두 받아내고 있다. 직전 저점인 작년 10월 중순과 비슷한 모습이다. 당시 발표된 작년 3분기 실적이 역대급이었다는 점도 판박이다.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작년 11월말부터 반등해 연말에는 8만원선을 회복했다.
이날 오전 11시50분 현재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500원(0.58%) 내린 6만8100원에 거래되고 있다. 52주 신저가다. 직전 장중 저가는 작년 10월12일의 6만8300원이었다.
외국인과 기관이 오전 11시10분 기준으로 각각 1158억1200만원 어치와 469억2200만원 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운 탓이다. 두 매매주체 모두 이날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가장 큰 규모로 순매도하고 있다.
미 연준의 통화긴축 드라이브 가속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추가 제제, 중국에서의 코로나19 재확산 등 대외 불확실성이 투자심리를 악화시킨 영향으로 보인다.
대외 불확실성 고조의 영향으로 외국인과 기관은 최근 들어 줄기차게 삼성전자 주식을 내던지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전일까지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 1조5357억3700만원 어치를, 기관은 6135억4800만원 어치를 각각 팔았다. 이 기간동안 외국인과 기관이 한국증시에서 가장 큰 규모로 순매도한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공매도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공매도 규모는 31만9452주(219억1563만원)로, 지난달 16일 이후 가장 많았다. 공매도 잔량도 지난 1일 기준으로 500만주를 넘어선 뒤 4일 기준 502만7203주가 남아 있다.
겹겹이 쌓인 악재 속에 삼성전자의 호실적은 빛이 바랬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77조원, 영업이익 14조1000억원의 잠정실적을 기록했다고 이날 개장 전 발표했다. 매출은 직전 분기에 이어 역대 최대치를 다시 한번 경신했다. 영업이익은 이날 아침 기준 에프앤가이드에 집계된 증권가 전망치 평균(컨센서스) 13조1106억원을 1조원가량 웃돌았다.
대외 불확실성과 공매도에 짓눌린 삼성전자 주가가 호실적에도 힘을 내지 못하는 모습이 작년 가을(9~11월)과 비슷하다.
작년 가을에는 중국의 부동산기업 헝다그룹의 파산 가능성과 미 연준의 테이퍼링(자산매입 프로그램 규모 축소)에 대한 우려가 시장을 짓눌렀다. 삼성전자 주가가 저점을 찍은 작년 10월13일 밤에 미 작년 9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이 공개됐다는 점도 판박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당시로서는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갈아치운 작년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도 역대 두 번째 규모였다.
작년 9월 하순부터도 외국인과 기관이 줄기차게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도했고, 공매도 잔고도 빠르게 늘어났다. 작년 추석 연휴 직후인 9월23일에는 194만6520주이던 삼성전자 공매도 잔량은 저점을 찍기 하루 전인 같은해 10월12일에 319만3804주로 증가했다. 이 기간동안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조3979억1600만원 어치와 9216억4400만원 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 치웠다.
실적 발표 이후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한달여 동안 횡보하다가 11월 말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같은해 12월24일에는 8만500원까지 올랐다. 외국계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작년 여름에 나왔던 반도체 업황 침체 전망이 빗나간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지금도 향후 반도체 업황에 대한 증권가의 전망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1분기보다 6% 가량 증가한 14조9000억원을 제시했다. 그는 “D램 가격 하락은 1%로 제한적일 것”이라며 “스마트폰과 PC 수요 둔화를 제한적인 공급이 상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낸드플래시에 대해서는 “가격 상승이 가능할 전망”이라며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업계의 공정 관련 사고 등으로 공급 차질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