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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서사·맞춤형 음악…'판타지돌' 킹덤을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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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그룹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된 세계관. 다양한 상상력 및 메시지가 깃든 세계관은 음악적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며 각 앨범 간 유기성을 부여한다. 세계관 스토리의 전개 방향은 팀의 컬러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가요계에서는 그룹 킹덤(KINGDOM)의 세계관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의 문화를 K팝화해서 다시 선보인다는 콘셉트 하에 팀명 또한 '7개의 왕국에서 온 7인의 왕'이란 의미를 담아 지었다. 멤버들이 각 왕국의 왕으로 분해 컴백 때마다 차례로 앨범의 주인공을 맡는다.

앞서 '비의 왕' 아서, '구름의 왕' 치우, '눈의 왕' 아이반이 공개된 데 이어 최근에는 '변화의 왕' 단을 공개했다. 단연 흥미로운 건 각 앨범이 담고 있는 이야기다. 멤버 수에 맞게 일곱 개의 앨범을 통해 일곱 왕국과 왕을 소개한다.

본인의 출생을 모른 채 성장해온 순진한 소년이 바위에 꽂혀있는 검을 뽑은 뒤 힘의 기반인 '킹메이커'를 위해 신성한 왕위에 오르게 된다는 아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왕이 바라보는 거친 세상에 대한 고뇌와 아픔, 그리고 치유와 희생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표현한 치우, 선과 악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불가피하게 절대 악의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 아이반의 배경이 음악을 통해 소개됐다.

일곱 왕국과 왕들을 소개하는 일곱 장의 앨범이 다 나온 이후에는 이들의 새로운 연결과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또 다른 전개가 이어진다.


마블을 떠올리게 하는 이 방대한 세계관을 구상한 이는 GF엔터테인먼트의 고윤영 본부장이다. 고 본부장은 18년간 안무 제작 및 댄서로 활동하며 동방신기, SS501, 소녀시대, 블락비 등 굵직한 아이돌 그룹 안무에 참여한 바 있는 유명 안무가 출신이다.

3년 전, 그는 킹덤의 세계관을 처음 머릿속에 그렸다. 고 본부장은 "춤을 계속 하고는 싶은데 더 이상 추기 힘든 상황이라 정말 많이 무너져 있을 때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때 GF엔터테인먼트 김남형 대표님이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제안을 해왔다. 이 세계관 이야기를 꺼낼지 말지 고민이 많았는데, 넷플릭스 '킹덤'이 나온 걸 보고는 빨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킹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벌써 16번째 앨범까지 구상을 끝냈다는 고 본부장은 "타 회사와 확실히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받은 노래에 맞춰 계획을 짜지 않는다는 거다. 대부분 타이틀곡이 확정된 상태에서 콘셉트를 정하는데 우린 그러지 않는다. 의상 및 뮤직비디오 콘셉트, 헤어 스타일 등을 다 정한 다음에 작곡가님에게 곡 제안을 한다"고 밝혔다.

이 말은 곧 모든 음악이 '킹덤 맞춤형'으로 제작된다는 뜻이다. 주인이 누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곡을 받아서 활동하는 게 아닌, 킹덤이 어떤 콘셉트를 진행할 것인지를 알고 이에 맞춰 곡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곡가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킹덤의 앨범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타이틀곡을 비롯해 대부분의 수록곡을 프로듀싱팀 올라운드(AllRN:D)의 로한(ROHAN) & 딴크(DDANK)가 작업했다.

고 본부장은 "작곡가님을 많이 괴롭혔다"며 멋쩍게 웃었다. 단 역시 "작곡가님이 없었으면 킹덤도 없었다. 음악을 트렌디하게 만드는 분들은 많은데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거다. 작곡가님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고마워했다.

작곡가 로한은 "괴롭힘을 많이 받았다"며 재치 있게 받아치고는 "본부장님이 갖고 있는 판타지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데에는 약 한 달 정도 소요된다. 음악을 바로 만들기보다는 스토리나 말하려고 하는 것들을 먼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중세 시대 유럽의 왕부터 동양풍의 느낌을 강조한 콘셉트까지 다채롭게 선보여온 킹덤은 이번 앨범 '히스토리 오브 킹덤 : 파트 4. 단'을 통해서는 한국을 배경으로 우리나라의 멋과 미를 음악 및 비주얼에 녹여냈다. 영원한 권세와 재물에 눈이 먼 반정 세력에 의해 왕실이 진압되고, 왕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진 상황. 쳐들어오는 적군으로부터 홀로 나라를 지키려는 왕, 단의 이야기를 그렸다.

타이틀곡 '승천'은 국악 에픽 댄스 팝 장르로, 온화하고 절제된 감정선을 지닌 한국 전통음악과 세련된 K팝 사이 크로스오버의 정점을 느낄 수 있다.

로한은 "국악이 들어가는 전통 음악이다 보니까 조금 더 민감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전통 음악을 알고자 주변의 실력자분들로부터 자문을 많이 받았고, 실제 연주자들과 어떻게 하면 아이돌 음악에 국악이 들어갔을 때 그 본질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 실험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악은 궁중에서 갖고 있는 정악과 민간인들 사이에서 불리던 민속악 두 가지였다. 킹덤은 왕이기 때문에 종묘제례악 악기들을 이용해 인트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가사에 집중해달라고 강조했다. 로한은 "말하려고 하는 바를 해석해내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이돌 음악이지만 상업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철저하게 킹덤의 스토리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누군가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세계관에 맞춰 음악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로한은 "시중에 나와 있는 음악과는 달라야 했다. 요즘은 해외에서 작곡가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해외 팝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킹덤이 그걸 쫓는다면 (앨범이) 주류의 음악들로만 채워지지 않을까 싶더라. 어려우면서도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앨범에는 가사부터 의상, 퍼포먼스까지 한국적인 것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빼곡하게 담겼다.

로한은 "국악기를 재현한 전자악기들이 있는데 우리는 실제 국악기를 연주해 녹음했다. 국악 연주자들이 직접 선율 라인들을 제안해줬다. 악기의 특성을 고려해 전통 음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통을 따르는 선율을 썼다"고 밝혔다.

이어 "그간의 크로스오버는 K팝 댄스곡에 국악을 얹는 식인데 그게 아닌 국악 자체가 살아 숨 쉬도록 하고 싶었다. 제목도 일부러 '승천'이라는 한국어를 택했다. 외국 팬들을 설득하기 위해 쉽게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엔 한국을 배경으로 하니 눈치 보지 말고, 조금 어렵더라도 가장 한국적인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고 본부장 역시 "동양풍, 오리엔탈 풍이라는 말이 싫었다. 그냥 한국적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1년 전부터 한복 디자이너들을 찾아다니며 의상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 덕에 한문화외교사절단장 정사무엘을 필두로 한복외교사절단 한복 디자이너 김정아, 진혜선, 강영숙, 이은진, 함은정, 박은혜, 송정희가 킹덤 7인을 한 명씩 맡아 의상을 총 3벌씩 디자인했다.

고 본부장은 "한국 사람들은 한복에 더 냉정하니까 걱정도 많았지만, 다행히 디자이너분들이 멋있게 의상을 만들어줬다. 이 또한 기준은 정장에 한복의 느낌을 섞은 게 아니라 한복을 기반에 두고 정장 느낌을 섞어달라는 거였다. 기준은 무조건 한복이어야 한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한복을 입고 킹덤 멤버들은 제기차기, 탈춤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훈민정음 타투 스티커를 붙이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보다 충실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세계관을 펼쳐나가고 있는 팀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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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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