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사태는 정치권 과잉 개입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주인(대우그룹·상하이자동차·마힌드라그룹)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못해 골든타임을 놓쳤다. 쌍용차는 2016년 티볼리(소형 SUV) 돌풍에 힘입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289억원)을 낸 뒤 5년 연속 적자다. 2020년엔 영업적자가 4493억원, 작년에는 2612억원에 달하는 등 최근 5년간 누적 적자만 1조원이 넘는다.
평택공장 문을 걸어 잠근 옥쇄파업과 굴뚝 농성, 해고자 복직 투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조 편을 든 정치권의 등쌀에 구조조정은커녕 해고자까지 전원 복직시켰다. 남은 건 ‘희망고문 후유증’뿐이다. 최근 매각 작업이 실패해 다시 생사기로에 섰다. 회사는 골병이 들었고, 이젠 일부 노조원이 아니라 노사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우리나라엔 정치권 개입으로 망가진 것들이 유독 많다. ‘정책이 아니라 정치’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집값 대책도 빼놓을 수 없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한 문재인 정부의 장담이 낙담과 사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질지 모른다. 반(反)시장적인 정책은 수급 및 가격 구조를 왜곡시켜 집값에 날개를 달아줬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정치인들이 밀어붙인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신고제)은 전세 매물의 씨를 말렸다. ‘전세난민’을 양산한 것으로도 모자라 서민들을 ‘월세난민’으로 전락시키고 수도권 외곽으로 내몰았다.
전기요금은 어떤가. 매번 전기료 인상을 억누른 결과 한국전력의 적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나고 있다. 한국 대표 공기업인 한전은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 신세가 됐다. 올해 영업적자가 2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도, 한전은 국제 유가 급등에 연동해야 할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해야 했다. 지방선거(6월 1일)를 앞둔 여야 정치권과 정부의 압력 탓이다.
중소기업과 영세상공인들을 좌절시킨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도 정치적 판단이 불러온 참사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처럼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진 심판정이다. 노동계에 유리한 판단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기업을 꽁꽁 옭아매는 규제를 산더미로 쌓아 올린 것도 국회 권력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제한(3% 룰), 일감몰아주기 처벌 강화, 대형마트 영업 규제, 해고자 노조활동 허용, 주 52시간제 강행,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등은 정치과잉 시대의 산물이다.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과거 숨 막히는 기업의 현실을 이렇게 토로했다. “신산업은 규제의 정글 속에 갇히다 보니 일을 시작하고 벌이는 자체가 큰 성취일 정도로 코미디 상황이다. 의료·교육 등 모든 큰 서비스 산업 기회는 완전투망밀봉식으로 닫혀 있고, 열자는 말만 꺼내도 역적 취급을 한다.” 당시 “정치가 이제 경제를 그만 놓아줘야 할 때”라는 박 회장의 말은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시장과 경제에 어설픈 ‘아마추어 정치’가 개입하는 흑역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할 때다. ‘소득주도성장’을 신봉한 문재인 정부가 ‘민간주도성장’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로 교체되는 데 대한 경제계의 기대는 크다. 민간주도성장이 성공하려면 기업들이 맘 놓고 창의적인 경영 활동에 나서고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기업과 정부, 정치의 경쟁력을 이렇게 비교했다. “기업이 1류로 올라서는 동안 관료(행정)는 3류에서 4류, 정치는 4류에서 5류가 됐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 ‘베이징 발언’을 통해 비판했던 정치와 관료는 수준이 한 단계씩 떨어지는 역주행을 하고 말았다는 게 기업인들의 솔직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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