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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유저들 덕에 나온 '롤랑의 노래'…베스트셀러 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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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프랑스 기사들의 무용담을 그린 고전 시집인 《롤랑의 노래》(휴머니스트)가 국내 번역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작자 미상의 11세기 고전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이 책이 나온 것과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 모두 게임 이용자들 덕분이라는 게 출판사 측 설명이다.

30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롤랑의 노래》는 현재 종합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라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13위),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14위)보다 높은 순위다.

《롤랑의 노래》는 1040년 1115년 사이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4002행의 무훈시(武勳詩)다. 현재 전해지는 프랑스 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기사 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왕국 최강의 기사 롤랑이 이교도와 배신자의 계략에 빠져 장렬히 순교하자 황제 샤를마뉴가 이교도 군대를 격파하고 배신자를 처형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촘촘한 서사와 기운찬 문체를 통해 롤랑의 담대한 순교와 샤를마뉴의 처절한 복수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책은 대중서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위대한 황제 샤를 왕께서는/칠 년 동안 내내 에스파냐에 계셨다./바다에 이르기까지 고지를 정복했고, 이제 그 앞에 저항하는 성이 더는 없다.’로 시작하는 시가 368쪽에 이르는 책을 가득 채운다. 주석도 줄줄이 달렸다. 이 책은 국내 최초의 중세 프랑스어 원전 완역본이다. 김준한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석사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롤랑의 노래》를 연구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에는 게임 이용자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시작은 202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휴머니스트 출판사는 2005년 처음 출간했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개정판을 냈다. 15년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 책이 돌연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돌풍의 배경은 ‘페이트 그랜드 오더’라는 게임이었다. 게임 속 길가메쉬 캐릭터가 실제 신화 속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했던 이용자들이 책을 줄지어 구매했던 것. 책은 1만 부 넘게 팔렸다.

더 나아가 독자들은 게임과 관련한 세계 각국의 고전을 믿을 수 있는 번역으로 출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중 하나가 《롤랑의 노래》였다. 각종 게임엔 성기사(聖騎士)를 뜻한 팔라딘이 자주 등장한다. 《롤랑의 노래》 등 초기 무훈시에서 처음 발견된 단어다. 책에 나오는 ‘샤를마뉴의 12기사’는 아서왕 전설 속의 ‘원탁의 기사’와 더불어 기사도 문학의 원형이다.

하빛 휴머니스트 편집자는 “마침 그때 김 교수도 《롤랑의 노래》 번역서를 내고 싶어 출판사를 찾던 중이었다”며 “게임 이용자들의 요청과 맞물려 2020년 하반기에 이 책의 출간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게임 이용자들이 출간을 요구했던 책을 몇 권 더 준비 중”이라며 “다음달에는 수메르 신화 속 여신인 ‘인안나(이슈타르)’를 다룬 《최초의 여신 인안나》를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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