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간 법정관리 등 기업회생 사건을 맡으면서 기업의 위기 극복을 도왔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로펌보다 기업에서 훨씬 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2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건설사로 자리를 옮긴 전대규 호반건설 부사장(54·사진)은 로펌이 아니라 일반 기업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 부사장은 지난달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에서 명예퇴직한 뒤 지난 17일부터 서울 서초구 우면동 호반그룹 본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는 호반건설 창업주 김상열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과 같은 전남 보성 출신이다. 보성 율어중 동문이기도 하다.
그는 법률뿐 아니라 회계, 세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광주 진흥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시험(제25회)에 합격, 1993년부터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9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거쳤다. 2020년부터 서울시 지방세심의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전 부사장은 “법원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법률과 세무, 회계 등의 지식을 융합해 기업에서 창조적인 시도를 하고 싶었다”며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고 말했다.
전 부사장은 법조계에서 기업회생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03년 광주지방법원에서 도산 업무를 맡기 시작한 이후 창원지법 파산부장(2015년), 수원지법 파산부장(2017년) 등을 거쳐 2019년부터 서울회생법원에서 근무했다. 파인리조트 골프장 회생을 주도했고, 미주제강 회생을 국내 최단기(44일)로 졸업시키며 화제가 됐다. 서울회생법원에선 옛 동양그룹 회생 사건을 마무리 지었고, 퇴임 직전까지 쌍용자동차의 기업회생을 이끌었다.
그가 집필한 《채무자회생법》은 기업회생 분야 베스트셀러다. 전 부사장은 “회생 사건을 맡으면서 기업의 내부 시스템을 비롯해 구조조정 등 경영 전반을 배웠다”며 “다양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본시장의 ‘플레이어’들과 일하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기업 경영에 대한 관심도 계속 커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호반그룹 법무실 대표를 맡아 그룹의 공정거래, 조세, 인수합병(M&A) 등 업무를 진두지휘한다. 2017년 대기업집단으로 편입된 호반그룹은 건설사 외에도 리조트, 금거래소, 투자금융, 언론사 등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룹 규모가 커지면서 공정거래 등의 문제 해결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전 부사장은 “호반그룹에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CP)을 체계화해 내부거래 등 공정 경쟁에 저해가 될 만한 이슈를 사전 점검하고 임직원 교육에 나서는 것이 당장 중요한 업무”라고 했다. 또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M&A, 조세 등 다방면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연수/안대규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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