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중고차 매매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하고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지난 7일 공개했다. 현대차는 출고 후 5년, 주행거리 10만㎞ 이내인 자사 차량을 매입해 성능 검사와 수리를 거쳐 ‘신차 같은 중고차’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계획이다. 매물의 성능, 적정가격 등도 인터넷에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구상이다. ‘레몬 마켓(lemon market)’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온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차, 중고차 시장 진출 … “소비자 편익 높일 것”
레몬 마켓은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질 낮은 물건이 많이 유통되는 시장을 말한다. 상품에 대한 정보를 파는 쪽이 꽉 잡고 있어 소비자가 ‘호구’ 되기 딱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중고차 매장에서 판매자가 침수, 사고 등의 이력을 숨기거나 품질을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아도 소비자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레몬 마켓은 1970년 미국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가 만든 용어다. 겉으론 맛있어 보여도 막상 먹으면 신맛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 레몬의 속성에서 유래했다.
완성차 제조사가 중고차까치 직접 유통하는 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벤츠, BMW, 도요타 등 수입차 업체들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고, 중고 시세까지 방어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에 막혀 진입하지 못했다. 중고차 업계 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측은 “대기업이 들어오면 5만 명 넘는 중고차 딜러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완성차 제조사들을 회원사로 둔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중고차 거래 시장에 국내 완성차 업체 진입이 규제되면서 수입차보다 국산 중고차 경쟁력이 떨어지고 소비자 불신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대차는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올해 2.5%, 내년 3.6%, 2024년 5.1% 이하로 중고차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기로 했다.
중고차 유통업계 반발 … “생존 위협”
중고차 시장 규모는 20조원에 달하지만 케이카, 엔카 등이 그나마 큰 업체이고 6000개 넘는 영세 사업자가 난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비자 피해 가운데 침수차를 일반차로 둔갑해 판매하는 수법은 가벼운 수준이고 감금, 협박 같은 극단적 사례도 나오고 있다. 믿을 만한 큰 기업이 많이 진입해야 소비자 불만을 해소하고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관건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이달 결정한다는 점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앞서 사전심의 역할을 하는 동반성장위원회는 소비자 후생 등을 이유로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고 판정한 바 있어 중기부도 같은 결론을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