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몽환적인 방을 지나 두 번째 방인 구찌 블룸에 들어서면
화사한 꽃들 사이에 부조리하게 놓인 소파가 관람객을 반기고 있다.
코끝에는 재스민과 장미향이 물씬 풍긴다. 구찌의 첫 여성용 향수 냄새다.
이렇게 구찌의 시즌별 테마를 바탕으로 꾸며진 방이 총 12개 놓여 있다.
관광객은 이 방에서 저 방을 구경하며 구찌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구찌에서 7년간 여정 집대성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사진)가 구찌에서의 7년간 여정을 담아낸 공간이 한국에 상륙했다. 1972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미켈레는 2002년 구찌에 입사한 뒤 2015년부터 수석디자이너(CD)를 맡았다. CD를 맡은 지 3년 만에 매출을 42% 늘렸을 뿐만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을 받는 젊은 브랜드로 구찌를 변신시켜 ‘패션업계의 예수’로 떠올랐다.‘구찌 가든 아키타이프:절대적 전형’ 전시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해 일본 도쿄와 홍콩 등을 거쳐 서울 동대문 DDP에 상륙했다. 미켈레는 “구찌에서 실행한 여러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전시했다”며 “지금까지의 성과를 대중과 나누는 게 이번 전시회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2015년부터 2020년 컬렉션까지 미켈레의 캠페인을 집대성했다. 총 13개의 구찌 캠페인을 12개 방으로 구성했다. 구찌 전시회는 관람객들이 구찌의 과거와 현재를 직접 손으로 만지고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두 번째 방인 구찌 블룸에서는 흙과 꽃들을 만지면서 자연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거울로 둘러싸인 컬렉터의 방에서는 수많은 가방과 수집품에 푹 안긴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각각의 방에는 컬렉션의 테마를 반영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프랑스 ‘68혁명’의 50주년을 기념해 파리 젊은이들을 묘사한 ‘2018 프리폴 캠페인’은 복도를 가득 채운 낙서들이 시선을 끈다.
‘2019년 크루즈 컬렉션 구찌 고딕’에서는 창세기 노아의 방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인류의 여정을 대형 스크린에 담아냈다. 관람객은 스크린의 영상을 관람하는 동시에 스크린 옆에 심어진 보리를 만지면서 자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거울의 파노라마를 표현한 ‘2016 크루즈 컬렉션 디오니소스 댄스’에서는 스크린과 거울을 교차해 방을 하나의 긴 미로처럼 표현했다. 하늘색 조명 아래로는 초록색 잔디가 장식돼 있다. 스크린에는 미켈레의 컬렉션을 입은 모델 영상들이 거울에 반사돼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미켈레도 감명받은 곳은?
전시회 후반으로 갈수록 볼거리가 많아진다. ‘2020 크루즈 컬렉션 컴 애즈 유 아_RSVP’에서는 이탈리아 로마 저택에서 열린 댄스 파티를 배경으로 여러 구찌 상품을 전시했다. 흰 접시와 크리스털 컵 사이에서 관람객은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옆으로는 댄스 클럽의 화장실이 묘사돼 있다. 흥에 겨운 젊은이들이 청춘을 즐기는 모습이 정지된 상태로 보인다. 남녀가 화장실 칸에 들어가 밀회를 나누는 듯한 모습은 또 다른 볼거리다.‘2018 가을·겨울 컬렉션 구찌 컬렉터스’는 국내에서 선호도가 높은 마몽 핸드백 200여 개와 나비 1345마리, 뻐꾸기시계 182개, 1000여 개의 곰인형 등으로 꾸며진 진열장을 볼 수 있다. 진열장과 바닥이 전부 거울로 돼 있어 마치 구찌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켈레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은 곳이기도 하다.
전시 마지막으로 갈수록 흥미로운 캠페인들이 눈에 띄었다. ‘2017년 프리폴 컬렉션 소울 신’에서는 파티 참가자들이 구찌 옷을 입고 몸을 흔드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1960~1970년대 서부 아프리카 국가 말리의 클럽 문화를 표현한 장소로, 삶과 생명의 힘을 예찬했다.
이어 미켈레의 첫 컬렉션인 ‘2015년 가을 겨울 컬렉션 어반 로맨시티즘’으로 막을 내린다. 미켈레가 ‘생각의 동굴’이라고 부른 지하철은 때론 지옥철이 되기도 하지만 휴식을 취하고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지난달 14일 시작된 사전 예약은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는 게 구찌 측 설명이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