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불과 0.73%포인트 차이(약 24만 표)로 승리했다.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최소 득표율 차이다. 이번 대선은 정당 재편성을 가져올 수 있는 ‘중대선거’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무엇보다 여야 주요 정당의 지지 기반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정당 간 힘의 균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로 ‘민주당 20년 집권론’은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안정적 국정 운영이 어렵고, 국민은 반으로 갈라진 엄중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통합과 협치’는 피할 수 없는 최우선 과제가 됐다. 윤 당선인이 당선 첫날 이번 대선의 의미를 “국민 편 가르지 말고 통합 정치를 하라는 간절한 호소”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과제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야당의 호응과 협조를 끌어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 윤 당선인은 무엇보다 ‘협치의 제도화’를 가져올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대선 과정에서 ‘4년 중임제 개헌,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정치개혁안이 나왔다. 문제는 이런 판에 박힌 ‘하드웨어적 제도 개혁’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장 협치를 끌어낼 수 없다. 그보다 윤 당선인은 역대 어느 정부도 시도해 보지 않았지만 즉시적이고 지속 가능한 협치를 가져올 수 있는 국정 운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행정부와 정당의 정책 협의 및 조정을 위한 당정 협의회 폐지다. 야당을 배제한 채 정부와 집권당 수뇌부가 모여 중요 사항을 다 결정하면 어떻게 협치가 가능하겠는가? 대통령제의 원형인 미국에선 당정 협의회는 없고 모든 사항은 의회의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처리한다. 앞으로 정당보다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고, 의원들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정치가 정상화되고 협치가 시작된다.
둘째, 정보의 공유화다. 대통령은 정부가 북한 동향과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한 정보를 야당 대표에게 정례적으로 보고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외교·안보 영역에서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항에 대해 초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셋째, 인사 제도의 혁신이다. 장관급 인사에서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폐단을 없애고 미국처럼 국회에서 인준 투표를 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청와대는 고위급 인사 검증 자료를 국회에 제출해 야당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넷째,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동을 분기별로 정례화하는 것이다. 이는 허울뿐인 여·야·정 상설협의체보다 훨씬 강력한 협치 장치다. 다섯째, 국민통합위원회를 한시 조직이 아니라 상설 기구로 승격하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는 여야 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는 것까지 고려해볼 만하다.
앞으로 대선 공약 이행 과정에서 여야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당선인이 제시한 검찰 독립성 강화 방안,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정부 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 ‘대장동 특검’은 여야 대격돌의 뇌관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받는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8년 중 6년이 여소야대였다. 그는 공식적인 집무 시간의 70%를 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협조를 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기간 한 달에 평균 1.7회씩 국민 또는 언론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두 대통령은 통치 환경은 최악이었지만 특유의 소통 리더십 덕분에 취임 직후보다 퇴임 직전 지지도가 더 높았다.
윤 당선인도 국민과 야당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CCO(chief communication officer) 대통령’이 되고, 여야 대선 공통 공약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또한, 자신이 약속한 대로 오직 국민만 보고, 오직 국민의 뜻을 따르고,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는 ‘국민 우선의 정치’를 펼치길 바란다. 그래야만 통합과 번영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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