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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구상을 오가는 색채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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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 모리츠(53·사진)는 세계적인 추상미술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90)의 부인이자 그가 그린 여러 작품의 모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991년 독일의 예술대학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학생과 지도교수로 만나 사랑에 빠졌고, 1995년 결혼했다. 모리츠는 거장의 뮤즈일 뿐만 아니라 영국 테이트모던과 독일 연방의회미술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재단 등 유수의 기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실력 있는 화가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모리츠의 아시아 첫 개인전 ‘Raging Moon(휘황찬란한 달)’이 열리고 있다. 작가가 2015~2022년 제작한 구상과 추상 회화, 에칭 연작 등 5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모리츠는 대학에 입학한 1990년대 초부터 고향인 동독의 도시 로베다에서 보낸 유년기의 경험을 주제로 한 구상 회화로 미술계에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9·11 테러와 전쟁, 헬리콥터, 꽃, 다큐멘터리 사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려왔다. 2015년부터는 내면의 풍경을 그린 추상화를 주로 발표했고, 근래 들어서는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은 추상 회화들이다. ‘여름’ ‘겨울’ 등의 계절이나 ‘3월’과 같은 특정 달, ‘발트해’ ‘안드로메다’ 등 자연물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자연의 다양한 요소를 보고 체험하며 받은 원초적인 감동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역동적인 붓질과 물감을 두텁게 쌓아 올려 만들어낸 거친 선, 붓질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색조의 변화, 물성을 강조한 다층적인 색채 등을 통해 소용돌이치는 내면의 에너지를 화폭에 옮겼다는 설명이다.

2020~2021년 제작한 에칭 작품 ‘장미’ 12점은 장미를 에칭 기법으로 새긴 뒤 유화 물감과 크레용으로 색을 입힌 작품이다. 형상은 비슷하지만 색채와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모리츠는 “동일한 모티프를 반복하면서 주제의 다층적인 속성을 부각한 것”이라고 했다. 삶과 죽음의 공존 등을 은유하는 구상 작품 ‘보트’ ‘국화와 해골’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는 4월 2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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