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 먹기, 즉 물물교환은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유통 방법이었을 겁니다. 물고기 열 마리와 꿩 한 마리를 바꾸자, 뭐 이런 식이었죠. 조상들은 아마도 만나는 장소를 정하게 됐을 겁니다. 시간도 얼추 맞췄겠지요.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강가에서 만나자.” 물물교환하는 부족이 늘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작은 시장이 부족 마을 인근에 세워졌겠죠. 교환하려는 사람과 물품이 더 늘었습니다. 물물교환이 시작된 이후 화폐가 생겨서 교환과 거래가 쉬워졌습니다. 유통은 화폐를 만나면서 혁명을 이뤘습니다. 거래자들은 무거운 과일과 돼지, 소, 곡식 등을 직접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한반도에 상설시장이 생겼습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숭례문 주변에 ‘시전행랑(市廛行廊)’을 설치했습니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시장 다툼이 있었습니다. 육의전이라는 시전상인에게만 물건을 팔 수 있는 권리(금난전권)를 부여했죠. 정조는 18세기 후반께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유통산업을 모든 이에게 개방했죠. 남대문시장은 1897년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재탄생했지요.
오늘날 두산그룹의 창업자 박승직 옹은 쌀과 종이를 한양에서 해남땅까지 가져다 팔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두산은 유통업계 강자가 됐으며 이후 중공업 부문을 강화해 오늘날 모습을 갖췄죠.
동네 가게는 슈퍼마켓이라는 것으로 진화했습니다. 1970년대 초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한남슈퍼가 생겼는데, 슈퍼마켓의 효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네 가게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제품이 더 낮은 가격에 팔렸죠. 슈퍼마켓이 남긴 유통 업적은 체인화했다는 겁니다. 기업화, 대형화의 조짐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슈퍼마켓은 곧 새로운 강자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주 들르는 편의점입니다. 밝은 불빛, 산뜻한 간판, 가지런하게 비치된 물건, 가게 주인의 친절함은 동네 가게와 달랐습니다. 1989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등장한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이 편의점 1호로 기록돼 있답니다. 편의점의 최고 경쟁력은 24시간 영업이었습니다. 편의점은 먹거리를 팔면서 택배, 현금 인출과 같은 금융서비스도 제공했어요.
우리나라 쇼핑문화와 유통시장 구조를 크게 바꾼 것은 미국 월마트였어요. 다양한 물건을 최저 가격에 파는 월마트는 세계 유통 강자였죠. 신기한 매장 구조도 화제였지요. 공장 같기도 했고, 창고 같기도 했어요.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하자 한국 유통업계는 “모두 월마트에 먹힌다”면서 난리를 피웠습니다. 월마트를 벤치마킹한 건 신세계 이마트였습니다. 월마트보다 더 쾌적하게, 더 복합적으로 꾸민 이마트는 밀리지 않았습니다. 이마트는 매장에 영화관, 식당, 문화레저 시설까지 넣었어요. 그야말로 복합쇼핑몰이었지요. 경쟁에 노출되자 변신한 것이죠. 대형마트들이 너무 잘나가자 견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대형마트가 동네 상권, 전통시장 상권을 집어삼킨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유통은 TV홈쇼핑으로 진화했습니다. 온라인 통신 발달로 소비자는 매장에 가지 않고 전화로 쇼핑할 수 있게 됐어요. 1995년 한국홈쇼핑(현 GS홈쇼핑) 등이 그것이었죠. CJ오쇼핑,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이 주목받았습니다. 온라인 쇼핑은 이후 빅뱅을 일으켰습니다. 1996년 인터파크와 롯데닷컴은 컴퓨터로 하는 쇼핑 서비스가 본격화했지요. 판매자들이 홈쇼핑 사이트에 입점하는 오픈마켓이 2000년대 등장했어요. 스티브 잡스가 만든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쿠팡, 티몬, 위메프 같은 모바일 쇼핑이 경쟁에 뛰어들었어요. 해외직구는 또 다른 유통이 됐어요.
지금 유통시장은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에 의해 주도됩니다. 모든 것을 배송하는 시스템은 시장을 휘어잡고 있습니다. 물물교환이 쿠팡으로 진화한 유통역사를 훑어보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쿠팡이 유통 진화의 마지막 단계일까요? 아니면 쿠팡도 대형마트 신세가 될까요?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
1. 인류가 물물교환만 하면 생활 수준은 어떻게 될지를 토론해보자.2. 미국 유통업계의 강자 월마트가 한국에서 철수한 이유를 알아보자.
3. 대형마트 시장이 개방되자 나타난 효과는 무엇인지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