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협회는 1962년 산업표준화법에 의해 설립된 글로벌 표준·품질 전문기관이다. 국내 산업표준인 KS 인증을 비롯해 국제 표준인 ISO, 일본 공업규격인 JIS 등의 국내 대표 인증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표준 경쟁시장에서 기업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2022년은 협회가 설립된 지 60주년 되는 해다. 협회는 ‘표준·품질과 함께한 60년, 디지털 전환·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지속 가능한 100년’이라는 슬로건(표어)을 내걸고 기업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표준화, 산업 발전의 원동력
표준은 제품 품질 향상의 기본 수단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 수준을 표준으로 정하고 이를 확산하면 품질 수준은 높아진다. 이런 표준이 보급되면 제품 생산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통일화, 단순화, 호환성 편익 증대 등의 효과가 나타나 전체 산업 발전으로 이어진다.한국표준협회가 설립되던 1962년 당시 우리나라는 대외무역 규모 5500만달러,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0달러 미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주요 수출 품목도 철광석, 텅스텐, 무연탄 같은 광물과 오징어 같은 1차 산업 생산품이 대부분이었다. 산업 규모와 수준이 열악했기 때문에 공업화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선 정부 주도의 표준화가 시급한 시점이었다.
1962년 2월 10일 국내 공학박사 1호인 유재성 박사를 비롯한 산업기술인 49명이 모여 한국표준규격협회(현 한국표준협회)를 만들었다. 정부의 표준화 정책을 뒷받침할 민간기구가 처음 출범한 것이다. 표준규격협회는 1966년 한국규격협회로, 1977년 한국공업표준협회로 바뀌었다가 1993년부터 한국표준협회가 됐다.
1963년 7월 KS 표시허가제도가 시행되면서 표준화와 품질관리 활동은 산업계에 본격적으로 보급·확산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KS 표준은 일본 JIS 표준을 번역해 제정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모방 표준에서 벗어나 역량을 키우기 시작했다.
강명수 한국표준협회 회장은 “우리나라가 1970~1980년대의 고도성장과 수출 증대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내고 2022년 현재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표준화를 통한 제품과 기술 경쟁력 향상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국제 표준 제정 능력은 글로벌 선두권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나라는 2010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 표준화 제안 건수 24건을 기록해 당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기업 품질·서비스 경쟁력 높이는 데 앞장
표준협회의 또 다른 주요 사업은 인증과 품질, 교육이다. 국내 1호 KS 인증은 1963년 당시 마포산업(현 금호전기)의 백열전구였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허가 제도에 따른 인증이었다. 1998년 KS 관련 업무가 민간(협회)으로 이관되면서 본격적인 민간 주도 KS 인증 시대가 열렸다.협회는 2007년 서비스 분야에도 KS 인증을 도입해 콜센터, 차량 수리, 골프장 서비스 등 총 7개 분야 63개의 인증 사업장이 KS 인증을 받았다. 2015년엔 협회가 단독으로 해오던 KS 인증 업무의 권한이 여러 기관으로 분산됐고 심사일수가 축소됐으며 중복시험도 면제되는 등 내용상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기후변화 대처에도 협회는 앞장섰다. 2004년에 온실가스 감축 실적 검증 전문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10년 연속 검증실적 1위 기관으로 입지를 확고히 했다.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제도와 관련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청정개발체제(CDM) 등의 온실가스 감축량 검증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협회는 국제적인 경영시스템 인증인 ISO 인증의 국내 대표 기관으로 ISO9001(품질경영시스템), ISO14001(환경경영시스템), ISO 26000(지속가능경영시스템) 등 다양한 인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협회는 1975년부터 국가품질경영대회를 47년간 개최하면서 품질경영 확산을 주도해왔다. 산업계의 전국체전이라 할 수 있는 품질분임조 경진대회도 열면서 전국에 5만여 분임조와 54만여 명의 분임조원들이 현장의 품질개선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까지 품질명장만 1543명을 배출하며 ‘품질 한국’을 이룩한 주역들도 길러냈다. 협회는 품질 교육에도 앞장서 1989년 1323명의 대규모 연수단을 조직해 대형 크루즈선을 타고 대만 일본 등의 제조 현장을 둘러보는 행사도 열었다.
2015년 국제표준화기구(ISO) 서울총회, 2018년 IEC 부산총회 등을 개최하는 등 글로벌 기관으로서 위상도 높아졌다. 설립 당시 구성원 10명, 매출 33만원에 불과했던 협회는 60년 만에 366명, 매출 1233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회원 수도 당시 136곳에서 4300곳으로 31배 증가했다.
협회는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에서 60주년 기념식을 연다. 강명수 회장은 “디지털전환, 탄소중립, ESG 등 산업구조 변화에 기업들이 대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로 지원할 방침”이라며 “지금까지 협회의 역사가 품질과 표준의 발전을 주도한 60년이었다면 앞으로는 기업과 사회, 나라의 혁신을 이끄는 100년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