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시장은 유통업계에서 가장 핫한 시장 중 하나입니다. 롯데와 신세계 등 대기업들이 뛰어들었고, 스탁엑스 등 글로벌 리셀(재판매) 플랫폼이 한국에 상륙했거나 곧 상륙합니다. 업계는 지난해 중고거래 시장 규모를 20조원으로 추산합니다. 쿠팡의 지난해 매출(22조원)과 맞먹지요.
중고거래 플랫폼 ‘빅3’는 당근마켓과 중고나라, 그리고 번개장터입니다. 이중 번개장터는 다른 두 플랫폼과 성격이 다릅니다. 물건 정리의 기능이 큰 두 곳과 달리 번개장터에서는 ‘취향을 위한 거래’가 이뤄집니다. 스니커즈, 명품과 연예인 굿즈 등 인기 제품이나 한정판 고가 제품을 거래하는 리셀에 특화돼 있지요.
지난해 번개장터의 거래금액은 1조7000억원으로 전년(1조3000억원) 대비 31% 증가했습니다. 올 초에는 신세계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시그나이트파트너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중고거래를 통해 ‘취향을 대중화’하겠다는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를 만나 번개장터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습니다.
번개장터의 지난해 말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1700만명입니다. 취향이 뚜렷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70~80%를 차지합니다. 번개장터 중고거래의 건당 평균 단가는 10만원을 웃돕니다. 최초 판매가가 20만원이 넘는 제품들이 거래된다는 뜻입니다. 생활용품 등 공산품보다는 브랜드 제품들이지요. 전체 거래비중 중 패션 비중도 절반에 육박합니다.
그래서 브랜드 위주의 검색이 이뤄집니다. 번개장터의 상위 검색어 50개 중 40개가 물건이 아닌 브랜드명입니다. 이용자들이 가방 대신 ‘샤넬’을, 운동화 대신 ‘나이키’를 검색한다는 뜻입니다. “번개장터의 중고거래는 내가 관심있는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는 수단”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입니다.
취향에 특화된 만큼 대중성에서는 아직 경쟁사들이 우위에 있습니다. 당근마켓과 중고나라는 누적 가입자 수가 각각 2200만, 2460만 명입니다. 이 대표가 ‘취향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이유입니다. “취향이라는 단어를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모든 쇼핑에는 취향이 나타납니다. 스마트폰을 삼성과 애플 중 선택할 때에도 취향이 반영되고, 패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깔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지요. 세대별로 다른 분야에서 취향이 나타나기도 하고요. 번개장터에선 골프와 캠핑 등 라이프스타일 영역을 강화하며 4050대가 많이 유입됐습니다.”
취향은 수익성에서는 강점이 됩니다. 여느 e커머스처럼 중고거래 플랫폼들도 적자일색입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번개장터는 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전결제 시스템 번개페이와 포장택배 등 부가 서비스들을 통해서입니다.
번개장터에서는 고가 제품 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안전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지난해 번개장터 거래규모 1조7000억원 중 번개페이를 통한 거래규모는 3000억원으로 18% 수준입니다. 결제 수수료가 3.5%인 것을 감안하면 수수료 수익만 연간 105억원입니다. 번개페이의 지난해 거래금액이 두 배 성장한 만큼, 앞으로 전체 거래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역 커뮤니티 기반으로 대면 거래가 많고 거래단가도 낮은 당근마켓, 카페에서 출발한 중고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방식이지요.
안전보장 서비스는 확장 가능한 범위도 많습니다. 이 대표는 중고차 시장을 선례로 들었습니다. 건당 거래금액이 수천 만원에 이르는 중고차 시장은 상품 보증은 물론 금융 지원 등 플랫폼이 소비자를 위해 만든 부가 서비스들이 수익을 창출합니다. 상대적으로 고가 거래를 하는 번개장터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보장해주는 과정에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성공을 거둔 요인도 취향에 있다는 평가입니다. 지난해 2월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번개장터가 개장한 ‘브그즈트 랩’은 국내 최대 규모의 스니커즈 리셀 매장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한정판 스니커즈들을 한데 모아 1년간 총 21만명이 다녀갔지요. 번개장터는 1호점 개장 이후 스니커즈 매장 2호점에 이어 명품 특화 매장인 3호점 ‘브그즈트 컬렉션’을 열었습니다.
번개장터의 오프라인 매장은 고객 경험에 집중합니다. 특정 카테고리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성지’를 만들어 취향을 즐겁게 누리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 대표는 “멋진 공간을 만들자 자신이 갖고 있던 상품을 판매하려 찾아오는 소비자들도 많았다”며 “현장의 온도를 느끼며 많은 공부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서 기대하는 건 신세계와의 합작입니다. 이 대표는 “골프와 스니커즈, 명품 카테고리에서 어떤 트렌드를 함께 만들어나갈지를 폭넓게 논의 중”이라며 “시그나이트파트너스와 (중고거래의) 신뢰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세계그룹은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보유한 데다 명품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만큼 정·가품 판정과 보증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쓱닷컴도 명품 중고거래를 준비중으로 번개장터와의 시너지가 가능합니다.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이제 태동단계라는 것이 이 대표의 판단입니다. “부동산과 자동차처럼 비싼 상품은 이미 중고시장이 신제품 시장과 규모가 유사하거나 더 큽니다. 국내 유통시장에서도 중고거래가 주류가 될 만큼 성장할 것이라고 봅니다. 시장의 변화에 맞춰 해나갈 일들이 아직 많습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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