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날은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얘기다.
“우크라 사태, 남의 일 아니야”
러시아거리의 정식 명칭은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다. 한국과 옛 소련이 1990년 수교한 뒤 러시아인들이 터를 잡으면서 생겨났다. 지금은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중앙아시아인이 러시아인과 뒤섞여 음식점, 잡화점, 환전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13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우즈베키스탄인 아모노브 씨(29)는 “주로 외국 바이어나 관광객이 ‘서울에도 우리나라 음식이 있구나’ 하면서 이 동네를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상인들은 “최근 발발한 러·우크라 전쟁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환전소를 운영하는 러시아인 게르마노나 씨는 1주일 새 200만원가량의 환차손을 봤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한 탓이다. 그는 “한 달 전 1루블을 16원에 샀는데, 지금은 12원까지 떨어졌다”며 “이미 거래한 루블화까지 더해 손해가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상품 배송도 문제다. 국제특송 업무를 하는 A씨의 가게엔 택배 상자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는 “지난달 28일이 러시아 배송 접수일이었는데, 전쟁으로 무기한 연기됐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자주 찾는 외국인 근로자는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는 게 막힐 수 있어 걱정이 크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가 국제 금융거래의 80%를 의존하고 있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퇴출하기로 했다. 러시아거리 근처 한 은행 직원은 “중앙아시아 국가로 송금하더라도 러시아 은행을 거치는 경우가 많아 언제 송금 경로가 막힐지 모른다고 외국인 고객들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활력 잃어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거리가 속한 광희동 상권의 유동인구를 보여주는 ‘길 단위 상존인구’는 2019년 4분기 ㏊당 5만9885명에서 작년 4분기 4만5657명으로 감소했다.유동인구가 줄자 상인들도 이곳을 떠났다. 같은 기간 ‘건물 단위 상존인구’도 ㏊당 22만3986명에서 17만317명으로 감소했다. 광희동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송영태 씨는 “2019년과 비교하면 이 일대 상인들 절반 이상이 떠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팬데믹(대유행) 장기화에 러·우크라 전쟁까지 덮치면서 이곳 상인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토르 씨(57)는 “6년째 이어온 잡화 가게를 닫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권리금이 아까워 금세 코로나19가 해결되리라 믿으며 지금까지 버텼는데 더는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엄모씨(66)는 “코로나19가 잦아들어 외국인 입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상권이 되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