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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지메르만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본인에게 맞춰 조율한 피아노 액션(건반과 해머의 연결 부분)을 들고 다니면서 공연장 피아노 틀에 끼워 넣는다. 녹음이나 녹화, 사진 촬영에도 극도로 민감하다. 2003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열린 첫 내한공연에선 무대 위에 놓인 마이크를 문제 삼으며 공연을 지연시켰다.
까다로운 조건만큼 지메르만은 이날 거장다운 연주를 들려줬다. 첫 곡인 바흐의 파르티타 1번과 2번은 자신의 해석대로 연주했다. 울림을 절제하고 박자를 엄격하게 지키는 바흐 레퍼토리 연주 관행에서 벗어나 왈츠를 연주하듯 자유롭게 박자를 탔고, 음의 울림도 줄이지 않았다. 나성인 음악평론가는 “쇼팽이 부활해서 바흐를 연주한 것 같았다”며 “섬세하게 춤곡의 뉘앙스를 살리면서도 진지하게 건반을 짚었다”고 평했다.
공연의 백미는 브람스의 ‘세 개의 간주곡’이었다. 모든 음이 자연스러웠다. 억지스러운 연주가 없었다. 적절한 세기로 부드럽게 건반들을 누르며 음량을 조절했다. 서정적인 선율의 간주곡 1번 연주가 끝난 뒤 객석에선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오히려 지메르만이 기침 소리를 흉내 내며 “편히 들으라”는 듯이 객석을 향해 손짓했다.
지메르만이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쇼팽의 ‘피아노소나타 3번’도 남달랐다. 기교를 절제하며 연주의 흐름을 이어갔다. 4악장에서 음표들을 유려하게 연결하는 아르페지오를 선보이며 현란한 손놀림을 보여줬지만, 전체적으로 감정을 절제했다. 나 평론가는 “화려한 연주 효과를 극대화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맞는 음색과 울림을 들려줬다”며 “완벽하게 빚어낸 쇼팽이었다”고 호평했다.
앙코르 곡으로는 우크라이나 출신 폴란드 작곡가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마주르카 19번’과 ‘프렐류드 1번’을 선사했다. 그는 연주하기 전에 폴란드 출신 작곡가로 알려진 시마노프스키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직접 설명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변하는 의미로 앙코르 곡을 선택한 것이다.
공연의 유일한 오점은 객석에서 울린 휴대폰 벨소리였다. 거듭된 장내 방송에도 연주 도중 서너 차례 벨소리가 울렸다. 특히 1부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중 ‘론도’를 연주할 때 두 차례 울린 벨소리는 관객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지메르만마저 흔들렸다. 1부 마지막 곡인 카프리치오를 연주할 때 박자가 다소 흔들리며 끝을 맺었다. 2부 쇼팽의 피아노소나타 3번을 연주할 때도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평론가는 “대가의 연주는 완벽했지만 벨소리가 그 완벽함을 깨트렸다”고 아쉬워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