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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탈냉전이후 더 그렇습니다. 하루에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상하기 위해 1억달러(1200억원) 짜리 비행기로 한 시간에 4만달러라는 돈을 들여 10만달러의 폭탄을 투하하는 무모한 짓이 현대전이니까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특히 그렇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이 명분을 줬다고는 하지만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러시아의 자작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친러시아 정부가 있는 돈바스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전면 침공을 한 뒤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옛 소련을 재건하는 차원에서 키예프에도 또 하나의 돈바스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친 서방정부의 싹을 자르고 말 잘 듣는 친러 정부를 건립하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체르노빌 원전을 점령해 핵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뜻대로 되느냐 안 되느냐가 이번주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밤마다 계속되는 러시아의 키예프 함락 공세를 버티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가동되고 있다는 협상이란 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느냐도 중요합니다.
최악의 경우 시간에 쫓겨 초조해진 푸틴이 민간인에 대한 유혈사태를 감수하면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초강력 제재로 대응 중인 서방 국가들이 과연 러시아 없이 살아갈 수 있느냐를 구체적으로 가늠해보는 것도 이번 주에 관심사가 될 전망입니다. '러시아를 세계 무역지도에서 지워버리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라고 생각되는 업종의 주가가 출렁일 것 같습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푸틴이 Fed의 긴축 속도를 조절하게 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이 맞을까요.
그 예고편은 오는 2일(현지시간)에 알 수 있습니다. 파월 의장이 2일과 3일 연달아 미 의회에 출석합니다. 2일엔 Fed의 경기 판단이 들어가 있는 '베이지북'도 나옵니다.
미국의 고질병이 된 인력난의 현주소도 확인해야 합니다. 4일에 공개되는 미국 '1월 고용보고서'를 통해 신규 일자리와 시간당 임금을 통해서입니다.
전체적으로 지정학적 위기 속에 향후 Fed의 긴축 정책이 어떻게 갈 지를 판단해보는 게 이번주의 최대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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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보는 대체로 적중했다
많은 사람들의 전망이 빗나갔습니다. 잘 나가는 점쟁이나 출중한 예언가, 유능한 미래학자도 푸틴의 행동을 정확히 맞추지는 못했습니다.
'설마 전쟁을 일으킬까'하고 의구심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돈바스 교전을 그렇게 일찍 감행할 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할 지, 친러시아 정부를 세우겠다는 야욕을 대놓고 드러낼 지 등에 대해 모두 '물음표'였습니다. 하지만 푸틴은 모두 그렇게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도 미국의 정보는 적중률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러시아를 교란시키기 위한 역정보란 얘기도 있었고 러시아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적 조치란 분석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첩보자산은 양질의 정보였습니다.
푸틴이 전쟁을 일으키길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득세하던 시점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이 이미 침공 결심을 했다"로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미국은 또 16일에 러시아가 공격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돈바스에 교전이 일어난 게 미국 시간으로 16일, 유럽시간으로 17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3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오늘밤 러시아가 전면 침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 미국시간으로 그날 밤, 유럽 시간으로 새벽 5시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습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세우려 한다는 얘기도 한달 전부터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핵 위협 카드까지 들고 나온 푸틴
그 용한 미국 정보당국도 키예프 함락에 대해선 확신을 주는 정보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하루 만에 차지할 것으로 봤지만 오판이었고요. 미국을 비롯한 정보 당국도 "곧 함락될 수 있다"고 봤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상 밖 우크라이나의 저항 때문입니다. 우선 화염병으로 러시아 전차를 막아낸 우크라이나의 국민적 결사항전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당기며 동반 입대한 20대 우크라이나 부부도 있었고 해외에서 자원 입대한 청년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자 '가니'란 이름처럼 가장 먼저 도망 간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달리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예프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미국의 망명 제안도 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코미디언 출신의 괴짜에서 존경받을 만한 리더로 격상됐습니다.
현재까진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으로 버티고 있지만 러시아가 언제 작전을 급변경할 지 모릅니다. 아직까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같은 민족으로 보고 우크라이나 국민을 향해 대놓고 포를 겨누고 있진 않지만 조급해지면 물불 가리지 않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집무실로 향할 수 있습니다.
키예프 함락이 늦어지면 러시아가 전쟁에 써야할 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로 러시아의 상당한 자금줄이 묶였습니다. 이러다 푸틴이 민간인의 유혈사태를 감수하고라도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하면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전망입니다. 게다가 푸틴은 체르노빌 원전을 점령한 뒤 핵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위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을 지 관건입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조건 꿇어"라고 하는 푸틴의 명령을 들어주지 않는 한 타협이나 타결이란 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무조건 친러 정부를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젤렌스키 대통령을 축출해야 합니다. 아니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NATO 가입을 유보하거나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퇴진해야 합니다. 양국의 괜찮은 출구 전략은 그 어디 사이엔가 있을텐데 이미 갈 데까지 간 푸틴이 그럴 수 있을 지가 관건입니다.
반도체와 국제 교역에서 러시아 없는 세상
세계 각국은 이미 러시아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도 하지 않던 러시아 수출 통제도 하기로 했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놨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 퇴출 결정도 했습니다. 러시아가 가던 길을 멈추거나 조금만 수정하면 이런 전방위적 제재가 번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러긴 쉽지 않습니다.
러시아를 지워버린 세상에서 1차적으로 가장 신경쓰이는 게 원자재입니다. 원유와 천연가스 외에도 각종 자원의 공급이 부족해질 전망입니다. 한국만 놓고 보면 반도체 산업이 "러시아 없이도 살 수 있다"라는 맷집을 길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희소가스인 네온, 아르곤, 크립톤, 제논 등의 생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게 위협 요소입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 예방주사를 맞긴 했지만 이번의 전 세계의 제재를 보면 차원이 다릅니다. 한반도가 일본과의 '소·부·장 대전'에서처럼 승리하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나 요소수 사태 때 중국의 몽니를 견뎠던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단기적으로 희소가스 재고를 최대한 확보하고 희소가스를 덜 쓰는 형태로 공정을 바꾸는 한편 중장기적으론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자체 대체재 개발로 전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SWIFT에서 러시아가 제외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큰 방향은 예상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교역량과 달러 결제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중국 중심의 위안화국제결제시스템(CIPS)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대체할 지는 쉽게 예상하기 힘듭니다. 그에 관한 정보도 이번 주에 챙겨봐야할 것 같습니다.
푸틴보다 궁금한 파월의 마음
요지부동이었던 미국의 통화정책도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긴축이라는 방향은 변함없겠지만 완급조절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예상입니다. 하지만 러시아 제재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할 수 있어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는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열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려운 게 한 길 사람 속'이란 걸 푸틴을 통해 배웠습니다. 선문답에 능한 파월 의장은 더합니다.
이번 주엔 그래도 반 길, 아니 반의 반 길이라도 가늠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 동부시간으로 2~3일 각각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파월 의장의 의회 발언을 통해서입니다. Fed 의장도 수시로 의회에 불려 가는데 이번엔 반기마다 하는 정기 호출입니다. 의원 수도 많고 질문도 좀 더 구체적인 하원 증언(2일)이 상원 증언(3일)보다 주목을 끕니다.
과연 우크라이나 사태가 긴축 정책에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해 미국 의원들이 다양한 형태로 물을 겁니다. 과연 3월에 금리를 50bp 올릴 지, 올해 공개시장위원회(FOMC) 때마다 올려 연말까지 총 7회 인상할 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악의 축'과 전쟁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라는데 파월이 과연 그렇다고 할 지 인플레이션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변했을 지도 들어봐야겠습니다.
파월 의장 외에도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1일),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2일),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은 총재(2일),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3일)도 이번 주 공개석상에 섭니다.
신규 일자리보다 더 중요한 시간당 임금
중요한 경제 지표도 나옵니다. 파월 의장의 말대로 고용시장은 탄탄하지만 문제는 인력난입니다. 물류난과 함께 공급망 사태를 장기화시키고 있는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괜찮아졌는 지를 볼 수 있는 지표가 4일 공개됩니다. 미 노동부가 발표하는 2월 고용보고서입니다. 비농업 부문 일자리 수와 실업률도 중요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집계한 2월 신규 비농업 고용자 수 예상치는 41만5000명입니다. 전달에는 46만7000명을 기록했습니다. 실업률은 4%에서 3.9%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최근 들어선 시간당 평균 임금 추이를 더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도대체 인건비가 언제까지 얼마나 오르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여서입니다. 그걸 통해 공급망 사태의 추이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민간 비농업 일자리에서 시간당 평균 임금은 31.63달러로 23센트 올랐습니다. 직전 12개월을 합하면 5.7% 상승했는데 이번엔 좀 더 개선됐는 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고질병 속에 전쟁 공포라는 급성 질환까지 얻은 상황입니다. 두 질환이 합병증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이이제이(以夷制夷)처럼 병이 또 다른 병을 잊게할 수도 있습니다. 늘 그랬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라는 주문을 외우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