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일상적인 상황도 이 사람의 화법과 만나면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음악으로 되살아났다. 툭툭 내뱉는 말투에서는 삶에 대한 관조, 해학 등 여러 감상이 흘러나왔다. 이 특유의 장르는 곧 장기하에게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장기하는 지난달 새 EP '공중부양'을 발매했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이후 약 3년 반 만에 내는 첫 솔로 앨범. 2008년 '싸구려 커피'로 대중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10년간 밴드를 이끌어온 그가 솔로로 새로운 첫발을 내딛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장기하는 곡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하는 것은 물론 믹싱엔지니어까지 자처하며 오롯이 자신을 앨범에 담아냈다.
하지만 밴드가 해체하고 창작의 심지에 불이 붙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장기하는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 밴드를 마치고 몇 달 신나게 놀다가 '이제 작업을 해볼까' 싶어 작업실에 앉았는데 장기하와 얼굴들 때랑 똑같은 것밖에 안 나오더라. 편곡도 작업창을 켜면 나도 모르게 6인조를 깔아놓고 시작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예전과 똑같이 할 거면 하고 싶지 않았다. 방향이 설 때까지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 그래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에 대한 결론이 나는 순간이 작년 초쯤이었다. 이제는 뭔가 만들어보면 되겠다 싶더라"고 말했다.
"어쭙잖게 밴드 때랑 비슷하게 할 것 같으면 (앨범을) 바로 내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라는 사람은 어떤 음악인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제 삶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죠."2년간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탐구한 결과, 그가 찾은 답은 바로 '목소리'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은 미니멀리즘의 끝을 달린다. 다섯 곡 전곡 모두 베이스 사운드마저 빠졌다.
장기하는 "결론은 내 목소리를 나답게 활용하자는 거였다. 그 외의 것들은 어떻게 바뀌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정체성이 목소리니까 목소리를 먼저 녹음하고 그 이후에 목소리에 어울리는 것이라면 어떤 소리든 더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만들었다. 베이스가 없다는 것도 만들고 한참 뒤에 알았다"며 웃었다.
그는 "연주가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라 목소리만 덩그러니 두고 목소리가 외롭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붙여나갔다. '이만하면 됐네'라는 생각이 들 때 편곡을 완료했다. 베이스가 없는 건 만들고 보니 나도 신기한 부분"이라며 "록적인 요소가 없는 것도 어쩌면 장기하와 얼굴들 때와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타이틀곡은 '부럽지가 않어'. 화자는 상대에게 자랑할 게 있으면 하라면서 자신은 전혀 부럽지 않다고 반복해 말한다. '네가 부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쉴 틈 없이 쏟아내는데 듣다 보면 상당히 부러워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역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장기하만의 화법이다.
미니멀한 사운드에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냉소 사이 묘한 감정까지, 전곡을 듣고 나면 이 앨범의 이름이 왜 '공중부양'인지 단번에 알게 된다. 장기하 역시 곡을 다 만들고 난 후 "대체로 붕 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음악을 들으니 비로소 앨범명 '공중부양'의 의미를 알 것 같다는 기자의 감상평에 장기하는 "그렇게 느꼈다니 좋다"며 기뻐했다.
디지털 앨범 커버는 장기하의 상반신이 90도 돌아가 있는 사진이다. 이 또한 의도한 것인지 묻자 장기하는 "디자인해 주신 작가님한테 여쭤봐야겠지만, 기자님이 음반을 듣고 왜 공중부양인지 와닿았다고 하신 것처럼 나도 옆으로 돌아가 있는 사진을 보고 '이건 뭐 물어볼 필요도 없이 공중부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사실 피지컬 앨범의 커버는 장기하의 몸이 앨범 뒷면까지 길게 연결돼 발이 물 위에 떠 있는 하반신까지 묘사돼 있다. 하지만 디지털 커버는 한 컷만 담기기 때문에 상반신까지만 나오게 됐다. 장기하는 "물에 떠 있는 하반신이 안 나와 있어서 그냥 똑바로 두고 보면 공중부양이라는 느낌이 없는데 이걸 옆으로 돌리니 확 달라지더라. '이게 바로 콜럼버스의 달걀이군!' 이런 느낌"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특히 장기하는 타이틀곡 외에도 4번 트랙인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국악인 이자람의 판소리 '심청가'를 샘플링해 본인의 목소리와 결합해 독특한 조화를 이뤄낸 곡이다.
장기하는 "소리꾼 이자람 누나가 고등학교 때 '심청가'를 완창해서 녹음한 4장의 CD 세트가 있다. 굉장한 '레어템'"이라면서 "군대에서 그걸 닳도록 들었다. 판소리가 엄청난 장르라는 걸 알았고, 우리만의 음악성이 대중가요가 가진 것보다 훨씬 확장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느낀 점들이 후에 음악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언젠가는 꼭 오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음악에 샘플링하면 어울릴 것 같아 허락받고 사용했다"고 밝혔다.
음악 이야기를 할 때 유독 자신감이 드러나는 장기하였다. 앨범을 완성한 후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묻자 그는 "늘 똑같다. '개쩐다'고 생각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1~5집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각이 안 들면 완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완성 직후에는 늘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후로는 시시각각 생각이 달라진다"고 털어놨다.
"완성도가 100퍼센트가 아니라고 하면 작업을 완성하지 않아요. 이번 음반은 뭔가를 완성시켰다기보다는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기본값이 이런 느낌이다, 이런 형태다'라는 걸 제시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고 싶은데 미래의 협업자들에게 '전 대충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새로운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의미의 음반이라 생각해요."장기하는 거듭 시작을 강조했다. "마흔 살이 된 저란 음악인의 좌표예요. 여기서부터 시작해보겠다는 거죠. 장기하와 얼굴들을 그 시기에 마무리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그때 그렇게 마무리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형태의 음반도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솔로 장기하는 자주 볼 수 있는 걸까. 장기하는 "장기하와 얼굴들 때는 싱글을 거의 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싱글도 내고 싶고, 다양한 아티스트들과도 협업해서 너무 무겁지 않게 한 곡씩 빠르게 내고 싶은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