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김민경 밀리의서재 매니저] ‘불청객’. 사전적 의미로는 ‘오라고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온 손님’이다. 한마디로 초대하지 않은 손님. 왠지 묘하다. ‘레드브릭 하우스’라 이름 붙인 이 집에서 나는 다양한 불청객과 만난다.
이사 온 때는 바야흐로 봄이었다. 날씨도 좋고, 집도 뽀송뽀송하고 마당엔 꽃도 만발해 있고 연애하는 기분처럼 달콤한 계절이었다. 헌데 짧은 봄이 지나가고 장마가 시작되면서 우리 집에 고약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누수와 곰팡이. 보기에 좋았던 빨간 벽돌에 폭우가 퍼부으면서 물이 스며든 것이다. 그 해 장마는 유례없이 길고 길었다. 결국 안방 벽과 천장을 곰팡이에게 다 내어 준 우리는 추석이 오도록 2층 구석에 이불을 펴고 자야했다.
여름 내내 고생하며 외벽 보수를 마쳤는데, 이번엔 겨울이 또 다른 자비 없는 손님을 모셔왔다. 처음엔 보일러 고장으로 가볍게 시작하더니, 진짜는 난방배관 누수였다. 천장에서 차가운 물이 흐르고 있는데, 우린 원인을 몰라 한동안 옥신각신만 했더랬다. 나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으면 밤을 새서라도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스타일(해결은 안 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맘이 놓인다)인데, 남편은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그냥 두자는 주의다. 도대체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두 화성인과 금성인은 여름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싸웠다.
집 안팎에서 살아있는 손님들의 무차별 습격도 빼놓을 수 없다. 자연의 생명력은 정말 경이로웠다. 굳이 정글을 찾아가지 않아도 한 여름 우리 집 마당엔 내 키 만한 잡초, 아니, 나무가 자란다. 과장인 줄 알겠지만, 슬프게도 진실이다. 도처에 풀이 많으니 자연스레 각종 곤충과 벌레가 따라온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사이즈의 거미와 돈벌레를 이 집에서 처음 봤다. 주택에 살면 매일매일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줄 알았는데, 사방팔방 산모기 때문에 마당을 누리려면 택일을 받아야 할 지경이다.
그 가운데 나를 정말 ‘심쿵’하게 했던 손님은 따로 있다. 지난여름,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던 때였다.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웬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여기가 가정집이에요?”
웬 생면부지의 아주머니 한 분이 거실창 밖에 붙어 서서 나를 구경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르고 얼음이 돼 버렸다. 그런 나와 달리 아주머니는 내게 태연하게 이것저것을 물어본 후 홀연히 사라졌다. 어릴 적 홍콩할매 이야기가 생각날 정도로 조용하고도 강렬한 출현이었다. 아주머니는 그냥 길을 지나가다 주택이 있어 신기해서 들어와 봤다고 했다. 정말이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은 여전히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 나를 놀래 키곤 한다. 그 불청객은 통제할 수 없기에 불편하다. 하지만 이젠 요령이 조금 생겼다. 다양한 변수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도 집의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조금 불편할 때도 있지만, 사실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러다 보면 아파트에서 만나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개방적이라 쓰고 허술하다고 읽는 대문 사이로 들어온 동네 길고양이가 우리 집 마당을 거쳐 마실가는 광경이라든가, 뿌린 적도 없는 깻잎과 허브 씨앗이 바람결에 실려와 마당 잡초 사이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기특한 모습 같은 것들이다.
얼마 전 마당에서 무심코 밤하늘을 봤다가 선명하게 빛나는 오리온자리를 찾아냈다. 이제 깨달았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운 좋게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런 별것 아닌 것에 화성인과 금성인은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또 하루를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매일 작고 새로운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공간. 예상 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곳. 주택살이 2년차,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요즘이다.
김민경 씨는 겁도 많고 꿈도 많은 직장인이다. 읽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독서 콘텐츠 플랫폼 회사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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