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미국, 유럽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와 러시아 사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덩달아 천연가스와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세계 경제 전망도 나빠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유 등 수입물가 상승과 함께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2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는 원유의 중동 의존도를 줄이고, 천연가스는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북해 유전을 개발해 자급률을 높이며, 천연가스는 러시아 이외의 지역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수입을 늘려나갔다. 그런데 가스는 석유와 달리 인수기지 같은 인프라 투자가 선행되는 만큼 단기간에 도입처를 바꾸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도입 형태에 따라 가격 차이도 커서 더뎠다. 더구나 과거 냉전 시대에도 소련이 가스를 큰 문제 없이 보내서 서로 간에 정경분리의 원칙이 지켜졌다고 볼 수 있다. 가스관을 잠글 경우 신뢰를 잃게 돼 계약 조건에 충실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서유럽은 가스 수요의 30%, 독일은 55% 정도를 여전히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이런 관계가 양측이 극단으로 가지 않을 지렛대 역할도 한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정치 상황이 유럽의 천연가스 시장에 불확실성을 만들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분리된 이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인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었다. 또한, 유럽으로 가는 가스의 상당 부분이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공급됐다. 러시아가 가격을 계속 올리고 우크라이나가 공급받는 가스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자 상환을 요청하면서 양국 간 마찰이 발생하고, 급기야 2009년 러시아가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가스 공급을 13일 동안 중단했다. 이에 우크라이나가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의 공급을 막아서면서 유럽의 가스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게 됐다.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은 이런 불확실성을 방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같은 동유럽 국가를 우회해 발트해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현재 논란이 된 ‘노르트스트림 프로젝트’다. 이달 초 미국과 독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강력한 제재 수단으로 이 사업의 폐기 가능성을 선언한 것이다.
냉전 시절에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가스공급이 이런 상황에 이른 데 대한 다양한 추정이 가능하다. 먼저 러시아 측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작년 12월 분명한 이유 없이 시베리아에서 생산된 가스가 유럽에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러시아가 가스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의문을 낳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러시아는 가스 공급 조절이 좋은 무기가 되며, 이로 인해 국제 가격이 상승하면 자원 의존형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일거양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서유럽의 안보가 취약해질 상황을 두고볼 수 없기에 미국은 ‘노르트스트림 프로젝트’를 무력화해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는 한편, 서유럽이 필요로 하는 천연가스를 공급할 다른 대안을 급히 찾게 된 것이다.
전쟁 우려에도 불구, 3월 말이 돼 우크라이나 인근이 해빙기에 접어들면 탱크의 기동이 불가능해져 전면전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당사국 간 벌이는 외교 노력 결과에 따라 긴장이 해소될 것으로 보는 낙관론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해가 해소되지 않으면 가스 시장의 불확실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가스는 석유와 달리 소비국 간 전략비축이 이뤄지지 않고, 현물시장보다 양자 간 장기계약에 의해 주로 공급된다. 따라서 수급 차질이 발생하면 대량 물량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스 시장의 안정을 위한 국제 공조에 적극 참여하면서, 비축량을 늘리는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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