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DX) 시대는 속도감이 다르다. 물리적으로 교류했던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지식, 아이디어는 물론 농담조차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증폭된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밈(meme) 현상’이 단면이다. 소위 ‘짤’로 지칭되는 이미지와 동영상이 주목받고 모방되면서 유행하는 놀이다. 무엇이든 재미있게 표현하고 기존 단어에 내포된 의미를 재해석하거나 변용한다. 최근에는 특정 세대를 넘어 정치·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 정치의 ‘레츠 고 브랜든’이 대표적이다. 작년 10월 앨라배마주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NBC 기자가 우승자 브랜든과 인터뷰할 때였다. 주변 관중이 알파벳 네 글자의 욕설로 ‘꺼져라 바이든’을 연호했는데, 기자는 ‘힘내라 브랜든(Let’s go Brandon)’이라고 응원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뷰 내용상의 불일치가 역설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면서 이후 미국 사회에서 ‘레츠 고 브랜든’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 밈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멸공’이라는 평범한 단어가 순식간에 밈이 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SNS에 올렸는데 북한의 군사적 도발 및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관심이 집중됐다. 멸치와 콩으로 차린 밥상 사진이 유명 정치인의 SNS에 등장하고 이에 대응해 관련 기업의 불매운동 주장도 나타났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밈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는 인간이 언어와 문자 등 소통 수단을 만든 이후 항상 존재해 왔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웃기는 농담은 삶의 활력소이면서 때때로 민감한 주장을 부담 없는 넛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다만 DX 시대의 밈은 속도와 중요성에서 아날로그 시대와 차원을 달리한다.
밈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창안했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진화의 원동력은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이며,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 전달을 위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명화된 인간은 생물유전자 진(gene)만으로는 설명력이 부족해 문화유전자 밈의 개념으로 보완했다. 생물유전자는 혈연으로 이어지는 번식으로 전달되는 반면 문화유전자는 언어와 텍스트에 기반하는 모방으로 전달되며 혈연과 무관하다. 문명의 중추인 종교적 정통성, 학문적 계승 등이 경전과 저작물을 통해 후대로 이전되는 사례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개체 차원에서도 생물유전자보다 문화유전자의 중요성이 커진다. 실제로 1만 년 전에는 지구상 어디서나 유사했던 인간이지만 현대에는 문화유전자가 결정적 차이를 가져온다. 20세기 최고의 천재라는 아인슈타인과 아프리카 원시 부족 부시맨의 자녀가 결혼하면 생물학적으로는 2세가 생산된다. 그러나 그 간격이 지구인과 외계인만큼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또한, 조직 및 집단 차원에서도 생물유전자에 해당하는 유형적 특성보다는 문화유전자의 발현인 무형적 측면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트렌드를 밈 현상이 나타내고 있다.
1976년 30대 중반의 신진학자가 도입한 신조어 밈은 DX 시대의 일반명사가 됐다. 이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서 디지털 시대 조직에 ‘무형요소의 부상, 속도의 가속화, 복잡계의 확산’이라는 세 가지 전략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무형요소의 부상은 유형자산의 쇠락과 소프트 경쟁력의 중요성이다. 아날로그 기업은 토지, 노동, 자본의 유형자산 3요소로 설비 최적화를 추구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기술, 브랜드, 데이터라는 무형자산 기반의 고객경험 최적화가 핵심이다. 속도의 가속화는 브랜드 경험, 고객 후기 등 밈적 요소가 광속으로 전파되고 공유되면서 명멸하는 측면이다. 복잡계의 확산은 원인·결과가 단선적이 아니라 복선적으로 변화하며 사전적으로 예측한 의도대로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인간을 여타 생물과 구분시킨 문명이 전달되고 발전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밈에 압축돼 있다. DX 시대의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재편되는 산업 질서와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시장 환경, 역동성이 증폭되는 고객 반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밈의 본질적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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