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세상을 집어 삼킬 태세입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인플레이션 독주 체제'가 마련됐습니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불안한데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파월 의장은 "증시에 신경쓰지 않고 고용시장도 내버려두겠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기자회견에서였습니다. 한마디로 "아무 것도 안보고 인플레이션만 보겠다"는 '1·26 선언'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Fed의 뒤늦은 과속에 더 불안해집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만병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좀 누그러졌으면 하지만 인플레의 광기는 갈수록 더해갑니다. 집값과 차값에서 시작해 기름값과 난방비로 확대되더니 이제는 '인플레 바이러스'가 생활 곳곳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프라임 회원의 연회비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최근 인상대열에 합류한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도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합니다.
시장에선 인플레가 늦어도 상반기 중엔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제는 다들 "모르겠다"입니다. 공포와 불안으로 먹고 사는 비관론자들이 득세하면서 투자은행들의 금리 전망도 포커판이 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미국 뿐만이 아닙니다. 강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지난주 영국중앙은행(BOE)이 팬데믹 이후 두 번째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유럽중앙은행(ECB)도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브라질도 5년 만에 두자리 수 금리로 복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도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미국과 러시아가 티격태격하는 정도였지만 베이징 올림픽만 아니었으면 이미 누군가 방아쇠를 당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투자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경과 오는 10일(현지시간) 나올 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숨죽이며 쳐다볼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번주 '한경 글로벌마켓'의 '정인설의 워싱턴나우'에선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의 위험한 관계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everything skyrocketing
미국에선 '3차 인플레'가 본격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집값과 차값이 인플레를 주도하더니 하반기엔 유가를 비롯한 에너지발 인플레가 극에 달했습니다.
이제는 생활 물가가 본격 인상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이것 없이 살 수 없다"는 '톱 3'에 들어갈 만한 아마존과 스타벅스, 맥도날드가 대표적입니다.
아마존은 4년 만에 프라임 멤버십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가격이 월 13달러에서 15달러로 오릅니다. 연회비는 119달러에서 139달러가 됩니다. 신규 회원은 오는 18일부터, 기존 회원은 3월 25일부터 적용됩니다.
스타벅스는 더 합니다. 넉달 만에 세번째 가격을 올릴 태세입니다.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가격을 올리더니 또다시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맥도날드도 지난해 평균 6% 가격은 올린 데 이어 올해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유는 짜고 친 듯 똑같습니다. 임금과 물류비(wages and transportation costs) 때문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미국에서 진짜 싸게 먹을 수 있는 육류와 채소, 우유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식당들과 할인 매장들은 가격표를 바꾸느라 너무 바쁩니다. 스티커 형태로 된 새로운 가격표를 떼어보면 기존 가격은 20% 이상 할인된 가격이었지만 이제 그 가격은 모두 옛날 일입니다.
그렇다고 1·2차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던 집과 차, 기름값이 잠잠한 것도 아닙니다. '카플레이션'과 '오일플레이션'은 여전합니다.
투자은행들 "금리 전망 일단 올리고 봐"
인플레이션이 심하니 Fed는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망도 더욱 강도가 높아집니다 .중요한 건 속도와 정도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니 너 나할 것 없이 "더 빨리 더 많이 올려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3월에 0.25%포인트가 아니라 0.5%포인트를 올려야 한다 하고 FOMC가 열릴 때마다 매번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BNP파리바입니다. BOA와 BNP파리바는 올해 FOMC 때마다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노무라증권은 3월에 0.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JP모간과 모건스탠리, 도이치뱅크는 최소한 상반기까진 FOMC 때마다 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봅니다.
반면 선물 시장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난 4일만 해도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연방기금 금리 선물시장에서 3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33.7%로 봤지만 6일 기준으로 14.3%로 떨어졌습니다.
전망이 왔다갔다 하는 건 파월 의장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상에 대한 가이던스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만 보겠다"거나 "데이터에 의존하겠다"고 하면서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전 금리 인상 시기 때는 달랐습니다. 2004년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 시절에는 FOMC가 열릴 때마다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Fed 의장으로 있던 2016년엔 매 분기마다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상했습니다.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는 파월 의장의 말대로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습니다.
지역 연은 총재들 "파월을 말려줘"
파월 의장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자 시장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조그만 이벤트에도 출렁거리며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죠. 인플레이션 지표인 금리에 민감해지고 빅테크 실적에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메타(페이스북)의 '어닝 쇼크'에 패닉이 되고 알파벳(구글)과 아마존 실적에 널뛰기를 했습니다. 해당 종목 변동률만 놓고 보면 '빅테크'가 아니라 '밈테크'(meme tech)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시장이 불안하니 지역 연은 총재들이 진화에 나섰습니다. 지역 연은 총재들이 과한 발언으로 사고를 치고 파월 의장이 수습하던 과거와는 정반대의 행보입니다.
올해 FOMC 투표권이 있는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는 지난달 31일 "금리 인상은 항상 점진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요. 3월 FOMC 때 0.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에 동조하던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0.5%포인트 인상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주워 담았습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도 지난 1일 "0.5%포인트 인상은 Fed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같은 날 패트릭 하커 필라델미파 연은 총재도 "0.5포인트 인상에 대한 확신이 적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올해 FOMC 투표권을 보유한 인사들입니다.
이번 주에도 FOMC 표결권이 있는 인사들이 발언을 합니다. 오는 9일 미셀 보우만 Fed 이사와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은행 총재입니다. 보우만 이사는 1월 FOMC 이후 Fed 이사로는 처음 공개석상에 섭니다.
미·러는 적대적 공생관계?
인플레이션만을 대적하기 버거운데 증시는 우크라이나발 갈등도 계속 소화해야 합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장군과 멍군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양국 모두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으로 전력을 모으고 있지만 양태는 다릅니다.
러시아는 조용히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 병력과 화력을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모두 미국과 유럽 언론들이 러시아의 은밀한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정도입니다.
반면 미국은 떠들썩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백악관이나 국방부가 직접 나서 공식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를 발표할 때나 지난달말 8500명을 유럽에 출전시키는 비상 대기 명령을 할 때, 지난 2일 공수사단 등 최정예 병력 3000명을 동유럽에 급파할 때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러시아가 병력을 늘리니 우리도 우방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직접 러시아군을 상대하지 않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을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러시아와의 대화 창구도 열어 놨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양국 모두 긴장 강도를 높이면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갈등 때문에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 좋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이자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입니다. 러시아의 지난해 정부예산 가운데 36%가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레드라인으로 정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지연시키게 된 것도 이득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로 러시아의 존재감을 높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손해볼 게 없습니다.
미국도 밑지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발 갈등을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합리화 근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유가 급등 때문이고 상당부분 러시아 탓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대놓고 얘기는 못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공급망 문제를 인플레이션의 핵심 이유로 홍보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공급망 문제가 단기가내 해결되지 않는다고 느낄 무렵 우크라이나 사태가 확전되고 있습니다. 내우(內憂)를 외환(外患)으로 해결하면 보통 대통령 지지율에도 도움을 받습니다.
이쯤하면 양국 모두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도움을 받은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물론 외교적 해법이 좌절돼 예상치 못한 형태로 전쟁이나 소요사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진 우크라이나 갈등을 서로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금리 확 올리나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발 갈등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여전합니다. 지난주처럼 작은 재료 하나가 급등락의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10일에 나오는 1월 CPI가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전달엔 전년 대비 7.0% 올라 인플레이션 우려를 가중시켰습니다. 시장 예상은 7.2~7.3%입니다. 이보다 높게 나오면 금리와 주가는 크게 출렁거릴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주보다는 덜하겠지만 이번 주에도 '밈테크'가 출현할 지도 관심입니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2020년 1월 이후 2년만에 1.9%를 넘어 이번주에 2%를 돌파하면 금리 민감주가 몰려 있는 나스닥이 휘청거릴 수 있습니다.
주요 기업들이 호실적으로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 지가 관심입니다. 8일에 화이자 소프트뱅크 등이 실적을 발표합니다. 9일엔 월트디즈니 우버 등이, 10일엔 코카콜라 트위터 등이 각각 실적을 공개합니다.
이밖에 9일 인도와 태국, 10일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11일 러시아 등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결정합니다. 이 가운데 러시아와 멕시코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 글로벌 증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라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호재가 악재를 덮을 수 있는 한 주가 되길 기대합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