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넷플릭스 세계 5대 인기 드라마에 꼽힌 ‘에밀리, 파리에 가다’엔 ‘샴페르(Champre)’가 등장한다. 파리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된 미국 대형 마케팅 회사 직원인 주인공 에밀리는 남는 포도 찌꺼기로 만든 와인의 마케팅을 맡게 된다. 그는 이 와인을 샴페르라 부르기로 하고, ‘샴페인은 마시는 와인, 샴페르는 뿌리는 와인’이란 기발한 마케팅을 펼친다.
뿌리기 전용 와인이라니. 샴페인이 ‘축제의 술’임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기쁜 일, 축하할 일이 있으면 우리는 샴페인을 마신다. 샴페인을 따는 순간, 시원한 발포음과 함께 행복감은 배가 된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샴페인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깃든 와인이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샴페인 맛에 반해 왕실의 모든 만찬에 샴페인만 내놓게 했다. 샴페인 잔 가운데 ‘쿠페’는 그녀의 가슴 모양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다. 마릴린 먼로는 1979년 인터뷰에서 “샤넬 넘버5를 입고 잠들고, 파이퍼 하이직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녀는 파이퍼 하이직으로 목욕할 정도로 이 샴페인을 사랑했다고 한다. 전기작가 조지 배리스는 먼로가 “산소를 들이마시듯 샴페인을 즐겼다”고 썼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평생 폴 로저를 마셨다. “승리의 순간에 샴페인은 당연하다. 패배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처칠이 샴페인을 두고 했던 말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눈감기 전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바로 샴페인을 충분히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 샴페인 열풍이 불고 있다. 축하할 일도 없고, 모이기도 어려운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속에 축제의 술이 날아올랐다는 건 아이러니다. 모든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욕망과 스트레스를 샴페인을 마시며 날려 버리려 하는 건 아닐까.
또 다른 새해다. 좋은 샴페인 한 병 사서 가장 간절한 소원 하나를 새겨 간직해보자. 황금빛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달콤한 샴페인을 만끽할, 내 인생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 오길 기대하며.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