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우리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대기 중 사망하는 등 의료체계 붕괴 직전의 위기 상황을 겪었다. 2019년 기준 한국 인구 1000명당 병원 병상 수는 12.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12.8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OECD 회원국 평균(4.4개)보다는 2.8배 많다. 왜 이런 혼란을 겪었을까.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생긴 일시적인 병상 부족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의료체계 문제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즉, 급성질환 중심의 현행 의료체계, 이로 인한 급성기 병상의 무분별한 증설에 따른 급성기·회복기·만성기 병상의 불균형,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정착되지 않고 있는 의료전달체계, 허약한 공공의료체계 등 오랜 기간 축적된 복합적이고 연쇄적인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나아가 한국 특유의 3저(底) 구조(저부담, 저보장, 저수가) 건강보험정책이 한정된 의료자원의 비효율적 이용과 왜곡된 배분, 이에 따라 궁극적으로 발생하는 국가 의료비 지출 급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이 지금까지 누려온 저비용·고효율 의료서비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가속화하는 고령화 물결 속에서 그 지속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 접근 방식에 대한 합의 도출 역시 시급하다. 민간의료기관 위주의 국내 의료서비스 체제에서는 수도권과 대도시로 양질의 의료 자원이 집중돼 공공의 개입 없이는 지역 간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건강 수준의 격차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의료기관의 역량 증진 및 민간의료기관과의 협력체계 강화, 건강보험 수가체계 개편을 통한 적정 수가 보장, 지역사회 주치의제도 도입 등 의료의 공공성과 지역사회 의료 강화를 위한 제도·재정적 지원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공공의료 확대 방안으로서 공공병상 확충,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증원의 실효성 논란에 관한 합의도 이끌어내야 한다. 아울러 단기간에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개선하고 지역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은퇴 의사를 지역 공공의료기관에 영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2021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은퇴 의사와 60세 이상 현역 의사의 절반 이상이 은퇴 후 의료취약지나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격의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더 미뤄선 안 된다. 우리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2월부터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이에 대한 경험과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원격의료 필요성의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한편, 경증 및 만성질환 환자의 편의성 증대에도 불구하고 오진 위험과 이에 따른 법적 다툼 가능성, 의료의 질 저하,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원격진료 전문업체의 병원 수익사업화,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도 여전한 상태다. 이제 국민건강 증진 최우선의 원칙 아래 편익과 비용, 정밀의료 등 미래 의료의 발전 방향,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보통신기술 발달, 세계적 추세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원격의료 도입 여부를 넘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입 방안을 내놔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원격의료의 단계적 시행 방안, 의료전달체계 확립, 건강보험 수가제도 개편, 법제도 보완 등에 대해 정부, 의료서비스 제공자 및 수요자 간의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 보건의료 거버넌스 개편 논의도 절실하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앞두고, 또 팬데믹을 거치면서 보건의료의 사회적 역할과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가져올 미래 의료 환경 변화, 기후변화가 촉발할 신종 감염병과 같은 신종 질병 등에 대한 대비 및 대응을 생각할 때 국가 보건의료 정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보건부’를 분리·독립해 보건의료 정책 수립 및 집행의 전문성과 공중보건 위기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의료 강국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 의료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미래 의료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손잡고 국민 건강 증진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보건의료 현안 해결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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