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곤혹스러운 때가 많아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업무에도 지장을 줘서 고민이 많습니다.”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A씨(34세)는 최근 새로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고민이 많다. 심각한 병증은 아니지만, 업무상 많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야 한다면 인간 관계뿐 아니라 사회 생활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가장 먼저 수면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수면 중 일어나는 기억의 재활성화 과정이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NPJ 학습과학’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깊은 수면을 유지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연구진은 18~31세의 참가자 24명을 대상으로 가상의 라틴 아메리카 수업을 듣는 학생 40명, 일본 역사 수업을 듣는 학생 40명의 얼굴과 이름을 보여줬다. 그리고 모두 낮잠을 자게 한 뒤 얼굴과 이름을 맞추는 검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수면 이전에 보여줬던 80명의 학생 얼굴을 포함해 총 230명의 얼굴을 차례로 보여주고, 라틴 수업이나 일본 역사 수업에 참가한 학생인지 혹은 처음 보는 얼굴인지를 분류하도록 했다. 이후 분류된 얼굴 중 기억나는 이름을 맞추게 했다.
그 결과 ‘서파 수면’을 오래 유지한 참가자군이 그렇지 않은 군보다 평균 1.5개 이상의 이름을 더 맞췄다. 서파 수면은 뇌파가 1Hz(헤르츠) 이하로 떨어지는 깊은 수면을 뜻한다. 이 단계에 진입하면 심장박동, 산소 소모량 등이 낮게 떨어지며 뇌가 ‘휴식 상태’로 돌입한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자는 동안 뇌파(EEG), 뇌전도(EOG) 및 근전도(EMG) 신호를 기록했다. 신호를 분석한 결과, 뇌에서 기억을 활성화하는 효과와 서파 수면을 유지한 시간이 비례하는 것을 확인했다.
수면 장애가 있는 참가자는 오히려 잠을 자는 동안 기억을 활성화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뇌의 신호를 이용해 분석한 수면의 질, 시간 등을 종합해 수면장애지수를 개발했다. 참가자의 수면장애지수가 높을수록 기억 활성화 효과는 떨어졌다.
연구를 주도한 켄 팔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무호흡과 같은 일부 수면 장애를 포함해 밤에 자주 깨거나 깊이 잠들지 못하면 기억력이 손상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수면 장애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수면 장애로 진료받은 국내 환자 수는 65만8675명이다. 2015년 51만4000명과 비교해 14만명 가량 늘었다. 20~30대의 젊은 층의 환자도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외에도 당뇨 비만 심근경색 등 다양한 질환이 수면과 관계가 있어, 수면 장애가 심각한 경우 병원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