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제82조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재확인했다. 이번 결정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2008년 10월 이후 벌써 다섯 번째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헌법소원은 헌법재판관 구성에 변화가 생기면 또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업을 허용한 법률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비장애인 청구인의 주장은 얼핏 보면 납득할 수 있다. 실제 과거 합헌 결정문 중에는 위헌이라는 일부 반대 의견이 있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시각장애인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고 특별전형 제도를 통해 대학 입시 문도 열렸으니 안마사업을 비시각장애인에게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해일 뿐 법과 현실의 괴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경쟁 과정의 공통점은 자격시험, 선발시험 등 각종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초·중·고교와 대학 등 전 교육과정에서 수많은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 시험은 무엇을 검증하는 것일까? 수학시험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정확히 풀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고, 변호사시험이라면 복잡한 법률 지식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읽고 답안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런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것이 비로소 공정한 시험의 시작이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 또는 음성 시험지가 제공돼야 하고 그에 따라 문제를 읽고 쓰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추가로 줘야 한다. 응시자가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편의 제공’이다.
지난주 나흘간 치러진 제11회 변호사시험에 몇몇 시각장애 학생이 응시했다. 이들에게 시각장애인용 컴퓨터가 설치된 별도의 고사장과 추가 시간이 제공됐다. 변호사시험은 법률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지 읽고 쓰는 것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다. 시각장애 응시생이 읽고 쓰는 데 필요한 대체 자료와 타이핑 여건을 제공해주고, 이에 드는 시간만큼을 더 제공함으로써 비로소 모든 응시생이 동일한 출발선에 서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각장애 응시생에 대한 편의 제공은 결코 특혜가 아니다.
이번에 응시한 한 시각장애인 이야기다. 그는 5년 전 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로스쿨 입시를 위한 법학적성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시험주관 기관에서 시험 1주일 전에 갑자기 시각장애인 전용 단말기 대신 일반 컴퓨터를 제공하겠다고 지침을 변경하는 바람에 문제를 풀거나 메모하는 데 애를 먹었다. 비장애 응시생의 경우 실제 시험을 위해 평소 연습해온 필기도구, 답안지 등 익숙한 시험 환경이 시험 직전에 변경됐다면 어땠을까? 난관을 뚫고 들어온 로스쿨에서도 3년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음에도 변호사 시험 장소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다시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비장애 응시생이라면 신경 쓰지도 않을 일에 시간과 열정을 낭비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학령기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비일비재 발생한다. 법적으로는 통합교육이니 특별전형이니 하며 장애인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장애인이 이런 문턱 앞에 좌절하고 만다. 장애인들이 실력 검증과 무관한 문제로 고민하게 해서는 안된다. 제대로 된 경쟁을 못하게 해놓고선 안마사 외에도 진출할 직업이 있다면서 안마사업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고 있는 의료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지금으로서는 매우 잔인하다. 마치 프랑스혁명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한 것으로 각색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는 말처럼.
문제는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각장애인이 안마만 할 것이지 변호사시험이다 행정고시다, 과거에 하지 않던 일을 시도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회가 더 큰 문제다. 장애인들이 여러 가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각종 시험 등에서 실질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받게 될 때 비로소 의료법은 위헌 결정이 날 것이다.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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