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에 이어 IBK기업은행도 퇴직연금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 발을 들인다. 270조원 규모 퇴직연금 시장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은행들이 '굴러온 돌' 격인 증권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ETF 매매 서비스를 앞다퉈 출시하는 모습이다.
ETF란 특정지수의 성과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를 상장시켜 주식처럼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10개 이상의 종목에 소액으로 분산 투자할 수 있어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주식'과 비교해 안전성이 높은 편이다. '묻어두는 돈'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면서 ETF가 주목 받고 있다.
11일 금융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조만간 퇴직연금 ETF 매매 시스템 구축에 돌입한다. 이를 위해 IBK기업은행 개인 모바일뱅킹 앱인 '아이원뱅크'(i-ONE Bank) 내 퇴직연금 메뉴에 'ETF'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매매와 정정·취소, 잔고, 체결내역을 제공할 예정이다. 소비자가 미리 설정한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면 장중 매도하는 '자동 환매 서비스'도 제공한다. 서비스 대상은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와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 고객이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퇴직연금 직접투자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ETF 매매 서비스를 추진하게 됐다"라며 "늦어도 상반기 말에는 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주요 시중은행들은 퇴직연금 ETF 매매 서비스를 출시했거나 출시를 계획 중이다.
은행권 첫 사례는 하나은행이 만들었다. 하나은행은 작년 11월 DC·IRP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연금 ETF를 출시했다. 이어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지난달 퇴직연금 상품 라인업에 ETF를 추가했다.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현재 매매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상반기 중에는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은행들의 이런 행보는 증권사로부터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해마다 큰 폭으로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액은 266조원에 달한다. 2018년 말 기준 적립금액이 190조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3년도 안 돼 40% 불어난 셈이다. 현재 전체 퇴직연금 잔고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잔고가 증권사로 옮겨가자 위기의식을 느낀 은행들이 맞불 작전에 나선 것이다.
경쟁력만 놓고 보면 은행들의 ETF 매매 서비스는 증권사와 비교해 뒤처지는 점이 많다. 은행은 증권사와 달리 고객과 신탁계약을 맺고 고객 대신 ETF 매매를 해주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탁 수수료를 챙긴다. 신탁 방식이기 때문에 실시간 매매가 사실상 어렵다. 앞서 작년 7월 금융당국이 '은행은 ETF를 실시간으로 운용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당국에서 은행들은 실시간 운용이 안 된다고 선을 그은 이상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도 "승산이 적다고 해서 ETF 매매 서비스를 내놓지 않을 이유도 없다. 고객들의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에서 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두 업권간 경쟁이 소비자에겐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란 판단에서다.
김병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시간 매매가 핸디캡이기는 하나 수수료는 경쟁을 거듭하면서 충분히 조정을 거칠 수 있을 수 있다. 또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래 써온 은행계좌를 통해 ETF를 매매하고자 하는 은행 고객들의 수요도 있을 것"이라며 "ETF를 통해 퇴직연금을 굴리려는 수요가 점차 확대되면 은행과 증권사 간 협력과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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