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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밈 주식’(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 개인투자자가 몰리는 주식) 투자 열풍을 이끌었던 미국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서 새로운 유행이 싹트고 있다. ‘안티워크(반노동)’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노동의 가치가 바뀌면서 시작된 ‘거대한 퇴사’ 물결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0월 18만 명이던 레딧의 ‘안티워크’ 커뮤니티 회원이 올해 초 160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능한 한 적게 일하거나 자영업 등으로 전환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데 관심을 쏟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곳 회원들은 스스로를 게으름뱅이(Idlers)라고 부른다. 일을 하더라도 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상당수는 생계를 잇기 위해 업무 강도가 낮은 아르바이트에만 몰두한다. 일부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함께 사는 룸메이트를 구하거나 음식을 얻으려 쓰레기통까지 뒤진다. 이곳 운영자인 도린 포드(30)는 “대부분의 노동은 무의미했다”며 “(직장 생활은)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데다 착취가 심했다”고 했다.
레딧에 안티워크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것은 2013년부터다. 하지만 최근 들어 회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 늘면서다. 이곳에서 가장 크게 환영받는 글은 자신의 사직서를 찍은 사진이다. 공유하는 글의 상당수는 배려심 없는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이다. 최근 ‘안티워크’ 회원들은 집단행동에도 나섰다. 식품업체 켈로그가 파업 중인 공장 노동자를 대신할 인력 채용에 나서자 수천 건의 가짜 지원서를 내며 이를 방해했다.
미국의 퇴사 물결은 숫자로도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기준 퇴직자는 453만 명으로 2000년 12월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치다. 많은 근로자가 더 나은 직장으로 옮겼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FT는 아직 많은 노동자가 일터에 복귀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노동 거부 물결이 미국에서만 활발한 것은 아니다. 중국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눕기(lay flat)’ 운동이 유행처럼 번졌다. 단순하고 덜 물질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직장 경력 등을 포기하는 젊은 층이 늘었다.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식품기업 타이슨푸드, 물류회사 페덱스 등은 급여를 올려도 사람을 충분히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골드만삭스는 노동 참여 거부 운동이 미국 경제 등에 장기적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