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금조달에 나서면서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입지가 탄탄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은 가속화된 산업의 변화 속도에 발맞춰 신사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다. 일부 기업은 풍부해진 유동성을 활용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도 했다. 카카오와 계열사들은 지난해 북미 웹툰·웹소설 콘텐츠 기업을 인수하는 데만 1조1000억원을 투입했다. 비슷한 시기 카카오 그룹은 기업 상장으로 조 단위 자금을 마련하고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등 활발한 재무활동을 벌였다.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수 년 전과는 반대 상황이다. 당시 정치권 일각에선 '기업 내부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해야한다'는 웃지 못할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위상 높아진 재무책임자6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기업들의 연말 정기인사에서 CFO의 직급 승진이 이어졌다. 현대제철 재경본부장(CFO) 김원진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철강산업 경기가 회복 국면에서 수익성을 높인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 부사장의 승진으로 CFO의 직급이 5년 만에 부사장급으로 격상됐다. 김 부사장은 향후 그룹의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중책을 담당해야한다. 현대제철은 그룹의 전기차 전환 및 수소생태계 확대 전략에 따라 전기차용 강판과 수소분리막 등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재원을 조달해야한다.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CFO) 역시 지난 11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하 사장은 ㈜LG 사장단 중 가장 젊다. 업계에선 ㈜LG가 미래전략과 투자처 발굴에 주력하는 회사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에 따라 힘을 실어준 것으로 평가한다.
CFO들은 역할이 커진 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지난달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전중선 포스코 CFO는 지주사 체제 전환 테스크포스(TF)를 이끌고 있다. 전 사장은 포스코의 철강부문, 글로벌인프라부문, 신성장부문 등 3개 부문을 모두 지원하고 그룹의 전략 방향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이창실 CFO(전무)는 IPO와 함께 11조~13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신주공모발행으로 자금을 안정적으로 최대한 많이 끌어들여야한다. IPO이후에도 급증하는 2차전지 수요에 맞춘 생산설비 증설 등을 위해 3년 동안 9조원 규모의 자금을 지출하는 역할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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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한 CFO출신 임원CFO가 한층 넓은 권한을 가진 자리로 이동하거나 직책이 변경되는 사례도 이어졌다. 노종원 SK하이닉스 CFO는 지난달 인사에서 승진과 함께 CEO직속 사업총괄 사장 자리에 앉았다. 노 사장은 2016년 임원이 된 후 5년 만에 사장까지 승진했다. 서울대 기술정책 석사 출신으로 2003년 SK텔레콤에 입사한 그는 여러 담당(부사장급)이 나눠 맡아왔던 세일즈, 전략 부문의 업무를 통합해 관리할 예정이다.
최윤호 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은 지난달 삼성SDI 사장(CEO)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 사장은 지난 2년간 삼성전자 CFO로서 사업운영 역량을 검증받았다. 성장 산업인 배터리 사업을 하는 삼성SDI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최근 성공적으로 기업 인수와 IPO 작업을 마무리한 CFO들 역시 입지가 한층 견고해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카카오의 CFO인 배재현 수석부사장은 조수용 대표의 퇴임 후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가 새 대표이사로 내정되는 등 경영진 개편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배 부사장은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만 국내 월급쟁이 가운데 가장 많은 81억700만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스톡옵션을 행사해 76억5200만원을 벌어들인 덕분이다. 배동근 크래프톤 CFO 역시 시장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상장으로 마련한 자금을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